감독 크리스 컬럼버스/주연 수전 서랜든, 줄리아 로버츠/출시 새한
고전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에서 가정은 여자들에게 감옥이자 성채였
다. 가정으로부터 탈출을 꾀하거나, 천신만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여주인공 사연이 여자 관객 손수건을 적셨다. 멜로드라마는 감미로운
고통을 즐기는 순응의 장르처럼 보였다. 영화속 여자들은 언제나 혹독
한 시련을 겪고 종국엔 남편과 연인, 자식을 위해 희생했다. 뒤집어보
면 남자를 변두리로 몰아내고 여자의 곤경과 욕망에 관심을 집중한 유
일한 장르이기도 했다.
여성을 일터로 불러낸 2차 대전은 전통적 연애관과 가족 개념을 뒤
흔들어 놓았다. 세대차와 가치관 갈등이 폭발하는 가족의 저녁 식탁은
동요하는 전후 미국 사회의 거울이었다. 50년대 가족 멜로드라마 명품
들은 우아하고 감상적인 화면에 의미심장한 정경을 담았다. 더글러스
서크같은 명장은, 억지 눈물을 강요하는 일종의 '테러'로 멜로드라마
를 외면하던 비평가들을 돌려세웠다. 때로 눈물이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98년작 '스텝맘'은 이미 깨진 가정에서 출발한다. 중년 재키는 남
편과 헤어졌지만 여전히 두남매 엄마 역할에 완벽한 전업주부다. 남편
의 새 여자 이자벨은 잘 나가는 젊은 사진작가. 아이 보기가 서툴다.
아이들을 둘러싼 두 여자 갈등은 재키가 암 투병을 시작하자 우정과
신뢰관계로 바뀌어 간다. 여자들 사이 경쟁과 연대가 이끌어가는 이
드라마에서 남자 존재는 극히 미미하다.
'스텝맘'은 옛 할리우드 모성 멜로드라마 전통을 신식으로 변주해
가지런히 재배열했다. 성공한 직업여성과 이상적 어머니상이 유서깊은
대립을 반복하다 화해한다. 그러나 근심은 남는다. 재키가 죽은 뒤 이
자벨은 과연 일과 양육, 두 짐을 진 채 잘 나아갈 수 있을까. 90년대
멜로드라마는 전처럼 일과 가정 중 양자택일을 윽박지르지 않고, 대신
여자귓전에 수퍼우먼 신화를 속삭인다. (김혜리·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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