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카메라를 요란하게 흔들어대는 영화들이 쏟아지는 속에서
'천사들이 꿈꾸는 세상'(La Vie R v e Des Anges·29일 개봉)은
드물게 잔잔하다.

이 프랑스 영화는 스물한살 두 여자 이자(엘로디 부셰)와 마리
(나타샤 레니에)의 우정어린 삶 한토막을 차분하고 따스하게 그린
다.

이자는 카드를 만들어 파는 떠돌이 행상. 릴르에 친구를 찾아
왔다가 허탕치고 봉제공장에 일자리를 얻는다. 그녀는 같은 공장
종업원 마리의 아파트에 더부살이를 한다. 외향적이지만 남을 배
려할 줄 아는 이자, 예민하고 이기적인 마리. 둘은 대조적이지만
조금씩 우정을 쌓아간다. 마리가 바람둥이 부자 청년(그레그와 콜
랭)에게 가망없는 사랑을 쏟으면서 둘 사이엔 금이 가기 시작한다.

에릭 종카 감독이 42세에 찍은 이 장편 데뷔작은 두 여자 이야
기이지만 페미니즘이나 레즈비언 영화가 아니다. 튀는 반전, 극적
긴장, 사회적 메시지에도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다. 3류 인생을
사는 젊은 여자들의 사랑과 희망, 집착과 좌절을 스케치하듯 담담
하게 따라간다. 음악도 최대한 자제했다. 자연광으로만 찍은 화면
이 거칠지만 담백하다.

엘로디 부셰는 뭔가 과거 상처를 지닌듯한 분위기를 내려고 한
쪽 눈썹을 끊듯 민 게 묘하게 인상적이다. 나타샤 레니에는 아기
처럼 해맑은 얼굴로 그다지 삶을 고민하지 않는 마리를 호연했다.

두 여배우는 꾸밈 없이 자연스런 연기로 작년 칸영화제에서 유
례 없는 공동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천사들이…'는 관객을 빨아들이는 게 공허한 테크닉이나 이미
지가 아니라 삶의 진솔한 이야기임을 새삼 확인해준다.

(* 오태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