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스크바=황성준기자 】 러시아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혼미 정국
으로 빠져들고 있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12일 공산당이 주도하는 국가두마(하원)의 지지를
받고 있는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총리를 해임시키고, 이른바 '마지막 옐친
심복' 세르게이 스테파신(47) 제1부총리를 총리 권한대행에 임명했다. 하원
은 그러나 스테파신 총리 인준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한 뒤 옐친 대통령 탄핵
안 표결을 강행할 태세여서, 대통령과 의회간 정면 대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헌법상 총리로 정식 임명되려면 하원의 동의가 필요하며,
대통령이 지명한 총리 후보 인준을 하원이 3차례 거부할 경우 하원이 해산
되고 총선을 치르게 돼있다.

스테파신 신임 총리 권한대행은 경찰 출신으로, 91년 8월 쿠데타 당시 옐
친 진영에 합류,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연방방첩국(FSK.FSB의 전신)
국장, 법무 및 내무장관 등 공안-정보계통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지난 4
월27일 제1부총리로 임명됐을 때, "총리 임명을 위한 사전포석"으로 풀이된
바 있다. 부총리는 의회 동의없이 2개월동안 총리 권한대행을 맡을 수 있
기 때문이다.

크렘린궁 관계자들은 프리마코프 해임을 "방어적 총공세"로 설명하고
있다. 프리마코프 내각 8개월간 옐친 대통령은 '정국 안정'을 위해 참을만
큼 참았다는 것. 유리 마슬류코프(공산당)와 겐나디 쿨리크(농민당)와 같은
좌익 야당인사들에게 부총리 자리를 내주었고, 공산당 요구대로 아나톨리
추바이스 전부총리와 같은 개혁파 인물도 내쫓았다.

그러나 야당의 공세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소연방 해체 ▲체첸
전쟁 ▲93년 의회 해산 ▲국방력 약화 ▲경제 파탄 등 5가지 죄목으로 대통
령 탄핵안을 상정, 표결을 강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 그렇지 않
아도 12월 총선과 내년 7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레임덕'으로
몰려온 옐친으로선 이대로 밀리면 정말 '감옥행'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
감에 시달려왔다는 것이다. 결국 '무조건 항복'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최후
의 공세'가 필요했으며, 의회가 스테파신 인준을 거부할 경우 크렘린궁은
'비상사태 선포'같은 극약처방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이 주도하는 하원은 "올 것이 왔다"며 담담한 표정이다. 시간 문
제였을 뿐, 옐친 대통령과의 마지막 힘겨루기가 불가피했다는 것. 겐나디
셀레즈뇨프 하원의장은 이번 조치를 가리켜 "옐친의 최대 실수"라고 말했다
. 일반 의원들도 "이미 민심은 반(반)옐친으로 기울었으며, 비상사태 선포
등은 옐친의 자멸 행위일 뿐"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한 공산당 간부는 "프리마코프의 인기가 계속 상승, '잠재적 경쟁
자'로 성장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는데 옐친이 제거해 주었다"며 '기쁜 속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sjhwang@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