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만화세상'인 것 처럼 보인다. 정부는 21세기 벤처산업이라
며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돈을 쏟아붓고 있고 젊은이들은 만화가를 희망
직업 1위로 꼽을 정도다. 99년 한국의 만화는 이렇듯 겉으로 보기에는
장밋빛이지만 한꺼풀 뒤집어보면 속은 이곳 저곳이 곪아있다. 최근 다시
곪고 있는 곳은 '대여점용 만화'.

'대여점용 만화' 또는 '만화방용 만화'는 잡지 연재를 거치지 않고
단행본으로 찍어내는 만화를 말한다. 한 작가 이름으로 한달이면 대여섯
권이 쏟아진다. 심한 작가는 30권이상을 양산한다. 하루에 12시간 이상
꼬박 작업을 해도 세 달에 겨우 단행본 한권을 만들어내는 잡지연재만화
와 비교해보자. 이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대여점용 만화'의 작가 뒤에는 '만화공장'이 있다. 작가가 직접 그리
는 것이 아니라 문하생들이 작품을 양산한다. 당연히 캐릭터는 추해지고
스토리는 헐렁해진다. 심지어 최근에 출판된 모 학원물에는 고등학교 깡
패조직이 경찰, 공수부대와 대결을 벌이고 안기부에서 탈출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만화평론가 박인하씨는 "만화가 상상의 세계를 다루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도 어느정도 리얼리티가 있을때 독자의 호응을 얻
을 수 있는 것"이라며 "절대적 질이 떨어지는 이런 작품들이 양산되면서
만화전체의 질이 추락한다"고 말했다.

사실 '대여점용 만화'가 처음 나온 문제는 아니다. 70∼80년대 만화방
전성시절부터 대본소용 만화가 한국만화의 씨를 말린다는 지적이 숫하게
지적되어 왔다. 90년이후 급격히 감소하던 만화방은 IMF이후 명퇴자들의
창업바람을 타고 만화대여점이라는 형태로 부활했다. 수도권에만 5만개
가깝다는 통계다. 또 '슬램덩크' '드래곤볼'이후 빅 히트작을 내지 못한
출판사와 작가들이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밀어내기식 제작'을 시작
했다. 출판물의 50%이상을 소화해주는 대여점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었
던 것.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절대적 질이 떨어지는 '대여점용 만화'가
한국만화를 고사시킬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체이싱 아미'의 남자주인공 홀든은 만화가다. 그는
영화속에서 "만화가 돈버는 수단이 된 것 같아. 웃을지도 모르지만 난
만화를 예술이라고 생각하거든. 정열을 가지고 그리던 그시절이 그리워"
라고 말한다. '대여점용 만화'가 일시적으로 몇몇 작가와 출판사에게 이
익을 주는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작가와 출판사들이 만화를 '돈버는 수
단'만으로 생각한다면 '만화세상'은 요원할 듯 하다.

(* 어수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