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1989)
감독 존 머스커, 론 클레멘츠/주연(음성) 조디 벤슨, 팻 캐럴/출시
스타맥스.

어렸던 그때, 우리는 베개만 올라타고도 먼 바다로 돛을 올렸다.돌
멩이를 깨워 비밀을 소곤댔고, 자는척 인형들 잔치를 훔쳐봤다. 그 무
소불위로 신나는 추억이 영원히 나이 먹지않는 세계가 있으니, 바로
애니메이션이다.

월트 디즈니는 인간의 꿈을 찍는 만화영화의 '초능력'을 간파하고,
현실 연구에 바탕한 판타지만이 팔린다는 점까지 깨우친 사업가였다.

전래동화를 뜯어보고 어린이와 동물을 관찰해 빚어낸 캐릭터들은 디즈
니 스튜디오를 애니메이션 왕국 수도로 세웠다.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37년)부터 '밤비'(42년), '신데렐라'(50
년)로 이어진 장편 만화영화의 영광은 66년 디즈니가 타계하자 사위어
갔다. 고만고만한 작품들이 명맥을 이으면서 80년대까지 계속된 디즈
니의 잠은 '인어공주'의 입맞춤이 깨웠다. 당찬 소녀 에리얼과 바닷속
친구들이 펼치는 발랄한 뮤지컬이 MTV 세대를 단숨에 포획했다. 혀가
잘리는 고통을 겪고 물거품으로 스러진 안데르센판 인어공주의 비련은
잊혀진 옛이야기가 됐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되풀이하는 공식들은 소장르 하나를 너끈히
엮어낸다. 결손가정에서도 구김살 없이 자란 주인공, 익살맞은 동물
조연, 화려한 브로드웨이풍 합창, 다른 세상으로 탈출하고픈 사춘기적
욕구…. '인어공주'는 오랜 디즈니 전통의 노른 자위만 섭취하면서,전
지구적 여름 이벤트로 부상한 90년대 디즈니 애니메이션들에 밑그림이
됐다. 겨우 열살배기이지만 '인어공주'는 디즈니 왕국사에서 작은 클
래식인 셈이다.

한때 디즈니는 어린이의 이상적 벗으로 떠받들리는가 하면, 순응주
의를 아이들 귓전에 속삭이는 사탄 취급도 받았다. 그러나 해를 거듭
할수록 흑백논리는 시들어간다. 세상살이도 아이들도 그리고 디즈니
영화마저도 좀 더 복잡해진 것이다.

( 김혜리·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