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비밀을 함께 무덤에 묻겠다"는 조직보호형 자살자가
일본에서 꼬리를 물고 있다. 6일엔 경영파탄으로 국유화된 일본
장기신용은행의 전직 부행장(우에하라 다카시·59)이 도쿄 한
호텔에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은행재직 때의 분식결산 혐의로
검찰조사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현장에선 "몸을 던져 책임을
진다"는 유서가 발견됐다.

2년전 대형 경제-오직사건이 처음 표출된 이래 8번째 희생자
였다. 다이이치강교 은행 전직 회장을 시작으로 지난 2년간 각
분야에서 사건이 터져 나오면서 희생자가 잇따랐다. 대장성 간
부, 국영기업체 사장, 현직 국회의원, 방위산업체 상무…. 모두
조직에서 출세 코스를 질주하던 엘리트들이란 점에서 공통적이
다.

장기신용은행 우에하라 전 부행장은 도쿄대 출신에 요직을
두루거친 선두주자였다. 은행이 거덜나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행
장이 돼있었을 것이라고 일컬어진다. 은행내에서 손꼽히던 국제
통이던 그가 최후엔 가장 일본적인 선택을 한 셈이다. 그래서
일본 사회는 더욱 충격적으로 받아들인다.

일본에서 '자살의 미학'이란 문학작품속의 용어가 아니다.과
거엔 조직과 상사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으
로 찬양돼왔다.

주로 정치적 사건에서 많았다. 록히드 사건때 다나카 전 총
리의 운전사가, 리쿠르트 사건때 다케시타 전 총리의 비서가 목
숨을 끊은 것은 유명하다.

최근엔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금융계, 대기업, 관계에 이르
기까지 대형사건이 터지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희생자
가 뒤따르고 있다. 조직을 떠난 인생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회사(조직)인간'의 마지막 충성인 셈이다. 죽음으로 무한책임
을 진다는 책임감 자체는 평가할만 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지배적 여론은 청산돼야 할 일본형 악습이란 비판쪽
으로 모아지고 있다. "진실을 영원히 은폐하는 것이 오히려 무
책임한 일."(쓰치모토 다케시 전 최고검 검사) 사카이야 경제기
획청 장관은 구미는 '설명책임', 일본은 '침묵책임'이라고 비유
하며 "이젠 침묵말고 설명하라"고 요구한다. 반면 한국에선 관
계자들이 '침묵책임'을 지는 경우마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