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의 무차별 전화세례가 화제를 낳고 있
다. 그의 별명은 '전화마'. 때와 상대를가리지 않고 수시로 전화
를 걸어댄다는 뜻이다. 비서를 통하지 않고 직접다이얼을 눌러오
는 통에 깜짝 놀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의 광적인 전화 애호벽은 원래부터 유명했다. 최근 들어 다
시 화제에 오르는 것은 그의 인기가 뛰고 있는 탓이다. 인기상승
의 원인을 따져가던 분석가들은 의외의 비결을 발견해 냈다. 그의
전화공세가 인기확산에 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보세요, 오부치입니다. 게이조입니다." 그의 전화는 항상
이렇게 시작된다. 상대방이 설마 하고 머뭇거리면 "내각 총리대신
오부치입니다"라는 보충설명이 붙는다. 용건은 칭찬과 격려의 내
용이 주류이다.

자민당 세코 히로나리(36) 의원은 당선후 첫 국회질의에 나선
날 전화를 받았다. "오늘 질의는 참 좋았다. 이제 당신들 세대가
주역이다."(오부치) 대선배가 직접 걸어온 격려전화에 한동안 감
격했다고 세코 의원은 말했다.

자민당 안에서는 '오부치 폰'을 못받으면 팔불출 취급을 당한
다. 용건이 없으면 "오랫동안 전화도 못해 미안하다"며 용건을 만
들어 전화를 걸어온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370명의 자민당 의원
중적어도 200명은 비서를 통하지 않는 총리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
다.

상대는 정치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저명한 저널리스트 다하라
소이치로는 부인이 병환으로 입원한 날 밤, 위로의 전화를 받았
다. 남의 집안 사정까지 어떻게 알았는지 기겁했지만 기분은 나쁘
지 않더라고 다하라는 말했다.

고시엔 야구대회에서 우승한 오키나와 쇼가쿠 고교에도 전화가
걸려왔다. 얼떨결에 수화기를 든 교감은 총리를 '자처'하는 상대
방의 정체가 끝까지 믿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부인의 병 뒷바라지
를 위해 자퇴한 시장, 총리의 일러스트레이션을 잡지에 그린 화백,
베스트셀러를 낸 장애자 대학생…. 분야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인
물이 '오부치 폰'을 받았다.

전화공세에는 그만의 독특한 노하우가 있다. 그의 비서팀은 신
문-잡지의기사 스크랩을 만들때 기사 관련인물의 전화번호까지 함
께 적어보고한다.

스크랩을 보면서 필요할때 적혀 있는 전화번호를 누르는 식이
다. 그가 총리관저 2층 집무실에 혼자 있을 때는 전화통을 붙들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주변에선 말한다. 전화시간은 '하루 3시간설'
이 다수설로 돼있다.

전화를 받는 상대방은 감격하며 '오부치 팬'이 되게 마련이다.

대개 여론 주도층이어서 지지도의 확대 증폭 효과도 크다. "권력
은 총구에서"라고 했던 것은 마오쩌둥(모택동)이었다. 오부치였다
면 "권력이란 전화통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했을 것이라고 정치권
에선 비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