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5월 MBC TV 휴먼 다큐멘터리 '박상원의 아름다운 TV'는 한 흑
인혼혈고아 소녀를 소개했다. 낮에는 방직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
간학교에서 공부하던 소녀는 가수를 꿈꾸고 있었다. "가수가 되면 아
빠가 찾아올지 모르잖아요." 그녀의 한마디는 시청자를 울렸다.
그 주인공인 고아 소녀 소냐(20)가 감성적 발라드 데뷔곡 '너의 향
기'를 발표하며 화려한 스타 탄생의 첫 발을 내딛었다. 어린 나이에
헤쳐내기 버거울만큼 고단했던 삶. 하지만 좌절하지 않은채 꿈을 키우
고 일궈낸 그녀의 성공 스토리는 그 자체로 가슴 뭉클한 한 편 드라마
다.
소냐는 어린 시절 본명이다. 그녀는 80년 대구 인근 미군부대 군인
이었던 흑인 아버지와 대구 시장에서 장사하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
났다.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저보다 여섯살쯤 많은 오빠
가 또 있었대요. 제가 태어나자마자 아빠는 오빠만 데리고 미국으로
돌아갔다는 게 아는 전부예요.".
그녀는 일곱살 때 경북 김천에서 농사를 짓던 외할머니댁으로 이사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어머니는 유방암 말기 진단을 받고 죽음을 기
다리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다. 슬
프고 무섭던 어머니의 죽음. 그녀는 그 시절 자신을 "외로웠던 아이"
로 기억한다. "동네 친구에게 많이 따돌림을 당했어요. 얼굴색이 저처
럼 까만 애가 없었거든요."외로움을 달래려고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불
렀다. 중학교 때부터 사람들로부터 노래 잘 한다는 칭찬을 들었다. 어
린 마음에 노래 잘 해 유명한 가수가 되면 아빠가 알아보고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홀몸에 소작으로 손녀를 키우던 외할
머니에겐 여력이 없었다. 중학을 끝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총명
하고 착한 제자를 안쓰럽게 여긴 선생님들이 구미금호여고 야간부 진
학을 주선해줬다.
기숙사에서 살며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고된 생
활. 그래도 공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공장은 귀마개를 해
야 할만큼 시끄러웠다. 일하며 목청껏 노래 불러도 뭐랄 사람이 없었
다. "방직공장 3년 동안 노래 연습을 한 셈"이라고 말한다. 장기자랑
때면 그녀는 최고 스타였다. 제자의 재능을 눈여겨본 선생님들은 돈을
모아 콘서트를 열어주기도 했다. 소문을 듣고 달려온 음반기획자가 그
녀를 스카웃했다.
그런 아픔과 꿈을 녹여낸 때문일까. 어쿠스틱 기타와 오케스트라
반주로 부른 R&B 발라드 '너의 향기'엔 진한 감성과 애틋함이 물씬 배
어있다. 가사속 '너'는 오랜 그리움의 대상인 '아버지'와도 오버랩된
다. 어쿠스틱 기타와 코러스가 한숨처럼 번지는 '아이리스', 첼로 선
율이 아련한 발라드 '지울 수 없는 너'까지 노래마다 호소력있게 가슴
에 닿는다. 파워넘치는 블랙 필(feel) 음색, 능란하게 애드립을 구사
하는 가창력은 스타 탄생을 예고한다.
소냐는 올해 경운대 전산정보학과에 입학해 여대생 꿈도 이뤘다.공
부를 더 하고 싶다는 그녀에게 음반회사가 학비를 대줬다. 소식을 전
하러간 날, 칠순을 넘긴 외할머니는 손녀 손을 부여잡고 그저 눈물만
흘렸다. "훌륭한 가수가 돼서 저를 도와준 많은 분들께 보답하고 싶어
요."그녀는 참 어른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