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 떨어져 막판 집중력 저하…국제대회 잇따른 '문턱 좌절'

♧바둑팬들의 '영원한 연인' 서봉수구단이 국제대회서 잇따른 반집패
에 울고 있다. 중요한 대목 때마다 번번이 반집을 져 탈락하는 징크스가
최근 몇년 사이 반복되고 있는 것.

4월 중순 도쿄서 벌어진 제12회 후지쓰배 첫판서 서 구단은 일본의
노장 구토(공등기부·59) 구단과 혈전 끝에 백으로 반집패했다. 국제무
대를 화려하게 누비던 서봉수가 이번에야 말로 멋지게 재기할 것으로 기
대했던 팬들로선 가슴을 칠 노릇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반집패 시리즈의 한 연장일 뿐이다. 지난해 1월
벌어진 제9회 동양증권배 첫판서도 서봉수는 일본의 가타오카에게, 4월
계속된 제11회 후지쓰배에도 미국 출신의 마이클 레드먼드 팔단에 각각
흑으로 반집을 져 대진표서 사라졌었다. 후지쓰배에서만 2년 연속 반집
패하는 신기록(?)이 세워진 셈. 이 과정에서 LG배서 8강에 진출하는 등
성과가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잇따른 반집 패로 인해 최근 국제무대에
선 거의 '휴업' 상태를 면치 못해왔다.

반집이란 바둑판 위에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수치. 맞바둑에선 흑의
선착 이점을 상쇄하기 위해 덤(공제)이란 게 있는데, 여기에 5집 반또는
6집 반 등 반집을 포함시킨 것은 무승부를 방지하려는 목적이다. 말하자
면 반집이란 승부를 결정하는 최소차 단위로, '귀신같은' 프로의 세계에
서 조차 반집 승부는 오랫동안 실력 아닌 운의 소관으로 간주돼 왔다.

그러나 그 치열함 때문에 반집 승은 또한 투혼의 결정체로 평가되기도
한다. 승패가 왔다갔다하는 백열전 속에서 반집을 이겨내는 쪽이야말로
진정한 승부사라는 논리다. 과거 투지의 화신으로 불리던 시절의 서봉수
는 반집패보다 월등한 비율로 반집 승 비율이 높았다. 93년 제2회 잉씨
배우승에이어 2년 전 진로배 9연승 신화 수립 때는 9승 중 3승을 반집으
로 장식했었다. 그같은 서봉수의 최근 잇따른 반집 패 악몽은 어떻게 설
명해야 할까.

여러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역시 그의 저하된 체력에
서 찾아야 할 것같다. 미세한 바둑의 승부는 최후의 순간 집중력에 의해
갈리며, 그 집중력이란 결국 체력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53년 생으로
올해 46세. 그는 분명 나이가 가져다주는 핸디캡보다 훨씬 큰 부피의 체
력저하를 겪고 있는 인상이다. 서봉수 자신도 이를 인정하고 있으며 심
지어 "나의 현재 육체 연령은 60대"라고 말할 정도다.

그는 ▶젊은 시절 몸의 혹사 ▶불규칙한 식사 ▶운동 부족 등 3가지를
자신의 급격한 체력 저하 원인으로 꼽고 있다. 특히 한창 때 이른바 야
통이라 해서 카드게임 등으로 밥먹듯 밤을 새운 후유증을 겪고 있다는것.

그렇다면 서봉수는 이제 끝난 것일까. 주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결론은
"아직은 아니다"이다.

서봉수는 확실히 범상한 승부사는 아닌 것 같다. 그는 지난해 가을부
터 매일 관악산을 등반한다. 식사는 철저하게 시간을 지켜 들고, 날이
어두워지면 두리번거리지 않고 칼같이 집으로 향한다. 모두가 승부사로
서 몸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20년 가까이 입에 대던 담배를 지난해
끊은 것도 같은목적이다.

게다가 그는 요즘 한국기원 기사실에 매일 개근하는 몇 안되는 프로중
의 하나다. 나와선 동료들의 대국 기보를 샅샅이 훑는다. 의문이 생길
때는 새카만 후배에게 조차 거리낌없이 설명을 청한다. 스스로 자신의
최대 장점이'흡수력'이라는 서봉수에게 이같은 일련의 노력은 상당한 성
과로 연결되고 있다.

그는 진로배 9연승 신화 직후 연패의 나락에 빠져 지난 한해 15승 16
패라는 생애 최악의 1년을 보냈었다. 올 들어 서봉수의 성적은 4월 하순
현재 13승 4패. 그 중엔 수십집을 져 있다가 반 집을 역전승한 기적같은
바둑도 있다. 국내서는 이미 완전히 과거의 솜씨와 투지를 되찾았다는
증거. 반집 패 악몽이 서린 국제무대서는 언제쯤 회춘(?)할 것인지 '다
음수'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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