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라우, 내레 못참갔어…".

경우에 어긋난다 판단되면 조금도 거리낌없이 들이받는 이북출신 노
인. 그러면서도 우리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인간애로 이웃을 감싸안는
매력적 노인의 모습이 지금 대학로 관객들을 울리고 웃기고 있다. 대학
로 인간소극장에서 공연중인 연극 '해가 지면 달이 뜨고'(극단 신화 ·
김영수 연출)의 주인공 서만칠노인. 베테랑 윤주상의 천의무봉 연기는
우리가 그리움으로 만나고 싶은 한 어른을 탄생시켰다.

노인은 망우리 달동네의 가진것 없는 서민이지만, 옳다고 여기는 원
칙은 굽히지 않으며 산다. 그는 평양만두 빚기의 달인이자, 평양 박치
기가'형님' 했다는 평남 중화 박치기의 '보유자'다. 젊은날 그의 만두
솜씨를 여러 식당이 탐냈으나 노인은 비싼재료 덜 쓰자는 주인의 장삿
속을'들이받은' 끝에 이젠 혼자 집에서 만두를 빚는다. 조금이라도 허
튼 수작 하려다간 그의 박치기를 맛본다.

"쇳덩이하고 부딪쳐 봐라 이놈아, 내가 까딱이나 하나. 지금도 요

앞 골목 전봇대를 들이받으면 망우동 전체가 정전이야.".

서민 동네에 이사온 떠돌이 노점상 청년 성준(김규철-최준용)와 부
딪치면서 내는 폭소들, "내가 이놈아, 지붕엔 눈이 허옇게 내렸어도 지
하실엔 불이 활활타고 있어"라는 식의 입담들이 극 초반 관객들을 정신
없이 웃긴다. 그러나 고향잃은 노인이, 뿌리뽑힌채 살아가는 이 동네
동희(추귀정) 동수(김진만)남매의 힘겨운 인생 행로를 보살피려 애쓰는
드라마 곳곳이 관객들 콧날을 시큰하게 만든다. 생선장수 동희가 교통
사고를 내고 거액을 합의금으로 뜯기게 됐을 때, 앞장서서 도와줬던 그
의 절규는 객석을 흔든다.

"내 가진거 없어도 당당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가
봐. 내레 오늘 처음으로 돈 때문에 머리를 숙였디. 받아버릴수도 없고,
답답하드만. 날래 술 사오라우. 그러디 않으면, 나, 심장 터져버리갔어.".

북에 두고온 아내에게 주고 싶은 하이힐, '오마니'께 둘러드리고 싶
은 목도리, 딸에게 입히고 싶던 색동옷을 늘 간직하던 노인은 끝내 세
상을 뜬다.

"우린 모두들 고향 잃은 사람들이야. 이제라도 여기를 고향 삼으면,
그 슬픔의 반은 이겨낼 수있지 않겠나."라는 유언에 객석은 손수건을
적신다. 실향민 관객들은 막이 내리면 분장실을 찾아 눈물젖은 눈으로
윤주상 손을 잡는다.

우리 삶의 중심에 있어도 좋을 것같은 이런 인물의 탄생은 배우 윤
주상의 탁월한 인물 해석에 힘입고 있다. 인물 성격을 표로 만들어가며
연구한다는 집요함을 갖춘 이 배우는 이렇게 말한다.

"연극의 인물은 현실 어느 곳에 있는 듯한 인물을 재현하기 보다는,
사람들 마음속에 그리움으로 자리잡고 있는 인간형을 연극적 판타지 속
에 녹여낼 때 가장 아름답게 가슴에 꽂히는 것 아닌가요.".

6월 6일까지 인간소극장. (02)923-2131.

(* 김명환기자mhkim@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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