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고난 재능으로 10년 내내 '베스트셀러 제조기' ##.

♧ 책장에 꽂힌 책은 거의 다 문학서였다. 10년 전 서울 구기동
오피스텔로 집필실을 옮기며 마련한 6개의 책장은 한쪽 벽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6칸씩이니 한 칸에 30권 잡으면 대략 1000권. 그
게 모두 소설책 아니면 시집이라니!.

"넘치면 '가차없이' 복도에 내다 놓아요.(웃음) 순식간에 없어
지던데요. 다시 펴 볼 일 없겠다 싶은 책들을 정리해요.".

보통 사람들은 다 읽은 소설책 따위에 미련을 갖지 않는다. 다
시 손에 쥐게 되는 책도 실용서 아니면 잘해야 인문·사회과학서쯤
될 것이다. 지금까지 만난 작가들의 서가 또한 역사서나 동서양 고
전 등 자료적 가치가 풍부한 책들로 메워져 있었다. 그런데 소설가
양귀자는 달랐다.

"좀 거창해 지는 감이 있지만, 운명이 나를 소설가의 길로 밀어

붙였다고 밖에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아요. 초등학교 5학년 때 글

좀 쓰는게 '발각'된 후 한시도 글쓰기를 멈춰본 적이 없지요. 아니,

도대체 도망갈 수가 없었어요.".

정말 그랬다. '떡잎' 시절부터 이미 알아본다고 했던가. 초등학
생때 외삼촌 책꽂이에서 이광수 전집을 발견, '유정'을 읽고 이불
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흐느껴 울었다. 너무 좋아서 말이다. 이런
세계도 있구나, 소설만 있다면 이 괴로운 세상(학교 가기가 끔찍히
싫었단다)도 얼마든지 살아나갈수 있겠구나, 했단다. 오빠 다섯을
위로 했던 양씨는 그들이 읽다 던져놓은 '차탈레이 부인의 사랑'을
위시해 했다.

본격적으로 소설 습작을 하던 전주여고 시절엔 수업시간에 소설
책을 펴놓고 있다가 교사에게 들키더라도 "양귀자니까…" 하는 묵
계가 퍼져있을 만큼 각종 백일장을 휩쓸었다. 원광대는 문예장학생
으로 4년 학비면제 혜택을 받고 들어갔다.

"딱히 할 일이 없으면 PC통신에 들어갑니다. 최신 유행가요나
최근 영화계 동정까지 샅샅이 훑지요. 게시판 등에 올라온 글들을
보며 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이 시대의 절실한 문제가 뭔
가를 파악하는데 도움도 되고요.".

쉴 때도 어쨌든 글을 본다 하니. 대학에서 소설 창작과 더불어
4년내내 학보사 기자를 했던 양씨다웠다.

지난 90년 전세 3000만원에 들어온 13평형 오피스텔(지금도 그
가격이라 한다)은 낮인데도 제법 어두웠다. 건물 방향에 일차적 원
인이 있었지만 양씨는 블라인드를 굳이 걷으려 하지 않았다. 도서
관에 쳐박혀 지내던 학창시절에도 항상 구석자리만 앉았다는 말도
떠오르고 해서, "어두운 방에서 생활하면 저도 모르게 우울한 성격
이 된다"는 지극히 시시한 충고 한마디를 했더니, "노트북 화면이
잘 보여서 난 좋던데…"라 답한다.

하긴 방의 조도에나 신경 쓰이는 기자의 우려와 아무 상관없이,
이방에서 생산된 소설들은 양씨에게 소설가로서의 명성과 부를 확
고히 안겨주었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 80만부,'천
년의 사랑'(전2권)이 100만질 200만부, 그리고 최근 나온 '모순'이
50만부.

책이 100만권 나갔다 함은 CD 음반이 그만큼 팔린 것과는 좀 다
르다. 책대여점에서 빌려보고, 식구나 친구들끼리 돌려보고, 서점
한구석에서 훑어보고…. 따라서 양귀자 소설을 한번이라도 접한 사
람의 수는 수백만에 이를것이다.

그녀는 한 작품이 끝나면 다음엔 뭘 쓸 것인가를 2∼3달, 길면
반년 가량궁리한다.

"A4 용지 크기의 백지 한장에 구상중인 소설의 분위기와 대강의
줄거리를 적어봅니다. 큰 글씨로 쓰니까 원고지 3장 분량이 채 안
될 겁니다.".

이 종이 한장이 만족스럽게 짜이면 짧게는 사나흘, 길면 1주일
쯤 마음을 가다듬은 후 집필에 들어간다.

"첫 단락이 제일 중요하고 또 힘들어요. 원고지 2장쯤 될까요.

이 부분이 술술 풀리면 금방 신이 나서 써지고, 여기서 막히면 그
후에도 계속 피를 말리는 고통이죠.".

92년 '이상 문학상'을 수상한 '숨은 꽃'의 경우, 첫 단락을 20
여회 고쳐썼다. 뒷 부분을 써놓고 후에 채운 경우는 단편까지 통틀
어 단 한번도 없었다.

"촌철살인의 문장을 좋아해요. 예를 들어 첫 문장에서 분위기를
띄우고, 두번째 문장에서 메시지를 전달한 후, 마지막 문장은 되도
록 짧고 강력하게 끝내려 하지요.".

대략적인 개요만 갖고 집필에 들어가기에, 자판을 두드리고 있
는 도중에도 수시로 다른 문장들이 생각난단다.

"노트북 곁에 메모지를 두고 재빨리 적어야 해요. 그때 붙잡아
두지 않으면 뉘앙스는 기억나는데 정확히 어떤 문장이었는지 살려
낼 수 없어요. 글쎄, 기막힌 글귀가 퍼뜩 떠올랐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니까….".

검은색 바지에 역시 검은색 비로드 차림인 양씨는 팔짱을 자주
꼈고, 가끔 옆머리카락을 귀 뒤로 살짝살짝 넘겼다. 앞가슴에 달린
손가락 한마디 반만한 나비모양 브로치가 희미한 형광 등 불빛에도
반짝 거렸다.

사실 양씨는 누구보다도 재능을 타고 났다는 말을 많이 듣는 작
가다. 등 그의 작가로서의 천부적 재능과 감수성
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없다는 말보다는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 좋지요, 뭐. 안
그래도 이렇게 징그러울 정도인데 만약 재능도 없이 소설을 써야
한다면 정말 천형일 거예요.".

불현듯 좀 깐작대고 싶어졌다. 재주는 인정해도 라는 표현은 유보사항을 내포하고 있지 않나, 시대정
신보다 작가정신에 충실하다는 게 칭찬만은 아니지 않은가, 일상
풍경이나 세태를 담아내는 '풍속화가'란 소리도 있지 않은가.

"어차피 한 작품에 모든 것을 다 담을 수는 없어요. 이렇게 읽
는 독자가 있으면 또 저렇게 읽는 독자도 있고…. 비평가들이 그렇
게 읽고 싶나보지.".

양씨의 자존심은 문단에서도 익히 알려진 바다. 대학 시절을 회
고한 글에서 양씨는 이라 쓴 적도 있다.

그러나 영화와 연극으로까지 만들어진 '나는 소망한다∼' 이후
비평계는 양씨에게 '대중 추수'라는 혐의를 씌어놓았다. 이후의 잇
따른 대중적 성공은 그 혐의를 확신으로 바꿨을 뿐이다.

그러나 양씨의 입장은 확고하다.

"작품을 생산하는 것은 작가입니다. 작품이 먼저 있고 말들이
있는 것이지, 수다한 언설이 우선일 수는 없지요. 작가는 비평가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양씨를 정말로 괴롭히는 것은 평단의 무관심이 아니라 '간
혹' 기대에 못미치는 독자의 사랑이다. 지난 90년 '희망' 초판 때
가 그랬다. 오죽하면 상심을 못이겨 쓰러지기까지 했었겠는가.

"진짜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서른 나이에 '헐렁헐렁하게 작가
노릇을 하지는 않겠다'고 다짐했었고, 그건 45세에 이른 지금도 마
찬가지예요. 전 생애를 소설에 투자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고….".

장식장 위에 웬 남정네와 찍은, 꽤 오래 돼보이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부군인줄 알았는데 물어보니 뜻밖에 가수 하덕규씨였다.

연작소설 '원미동 사람들'의 마지막 작품이면서, 소설내에서 그
가사가 자주 반복되는 양희은 노래 '한계령'의 작곡가다. 노래가,
특히 마지막 부분이 마음에 들어 소설을 썼고 제목도 그대로 붙였
다. 좋아하는 가사는 가사대로 있고, 양씨의 착 가라앉은 눈매
엔 아직 지친 기색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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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자 '엿보기'
"글 쓰기 외 잘하는 일 있으면
그 일 하는 게 100번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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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전북 전주생. 원광대학교 국문과 졸업. 78년 '문학사상'
에 '다시 시작하는 아침'이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데뷔. 연작소설
집 '원미동 사람들'과 '희망'(전2권)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천년의 사랑'(전2권)'모순' 등 장편소설. 창작집 '귀머거
리새' '슬픔도 힘이 된다'. 인물소설집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
공' '길모퉁이에서 만난 사람들' 등 작품다수.

●집필 속도 = 처음으로 시간 부담없이 쓴 장편 '모순'은 하
루 30∼40장씩 2개월 걸렸다. 빨리 쓰는 편이다.

●어떤 노트북 = 맥킨토시의 워드 프로그램인 '클라리스 워크'
를 쓴다. '아래아 한글'은 글씨체가 나와 안맞는다. 보기에 부담
이 없는 '서울체'로 작업한다. 한때 데스크톱을 사용해 봤는데 화
면이 너무 커 눈이 아팠다.

●원고지 시절엔 = 초고를 대학노트에 썼다. 연필로 쓰고 마
음에 안들면 지우개로 깨끗이 지워야 계속 작업을 할수 있었다.노
트의 오른쪽 면에만 썼고 왼쪽 면에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것을 메
모했다.

●제목은 = 쓰기 전에 붙이는 경우와 다 마친 다음에 붙이는게
반반쯤 된다. 단편은 쓰고 제목 다는 경우가 많았고.

●작업 시간 = 부천 원미동 시절(82∼90년)에는 자정부터 새벽
까지 썼다. 서울로 옮긴 후 낮밤을 바꾸기 위해 3년 가량 고생한
후 지금은 오전에 1시간,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3시간쯤 작업한다.

●집필 준비 = 방을 쓸고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 어지럽혀져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글 쓸 때 라디오나 CD를 틀어 놓는다.그
래야 덜 외로운 것같다. 물론 집중해서 듣지는 않지만.

●작업 차림 = 발을 꼬거나 의자에 올려놓는 버릇이 있다. 동
작이 편한 옷.

●글 안써지면 = 안써져도 방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는다. 어
떻게든 쓴다. 정 안되면 잠깐 잔다.

●퇴고는=고치면서 쓰는 타입이기에 퇴고 과정은 거의 없다.다
만 다 쓴 다음에는 최소한 이틀쯤 머리를 비운 후 입으로 한번 소
리내어 읽으면서 고친다.

●작가 자신을 주제로 한 소설이 거의 없는데 = 그렇다. '유황
불' '숨은꽃' '한계령' 정도다. 나를 소설화했을 때 무슨 재미가
있겠나. 또 그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나.

●제일 마음에 드는 자신의 작품 = '희망'과 아직 책으로 묶이
지 않은 단편 '금지된 말'.

●다른 작가들 작품 많이 읽나 = 동시대 작가들 것은 거의 다
읽는다. 신인들 것도. 빨리 읽으니까.

●문학책 외에 즐겨 읽는 책은 = 기독교 관련 서적. 개신교 집
안이기도 하고, 문학작품과 비슷한 것 같고 해서.

●기억에 가장 남는 책 = 굳이 들라고 하면 엘리아스 카네티의
'구제된 혀'와 보르헤스의 작품들.

●좋아하는 문인 = 작품으로서는 은희경 김영하가 좋고, 자주
만나는 작가는 강석경이나, 윤흥길 박범신 등 원광대 동문들.

●싫어하는 작가 = 10∼20년 이상 계속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
는 어쨌든 존중한다. 후배들이야 싫어하기까지할 이유가 없고.

●특기 = 요리로 알려져 있으나 고향 음식 하는 정도다. 없다.

●운동은 = 정말 안한다. 아예 싫어한다. 나이 먹으면서 권유
를 많이 받지만 자신을 구속하고 싶지 않다.

●작가가 되려는 이에게 = 글 쓰는 것 말고 자신이 잘하는 게
없는지 잘 생각해보라. 조금이라도 잘하는 게 있다면 그 일을 하
는 게 100번 낫다. 작가로서 서기까지는 정말 '팍팍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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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부군
출판사 사장인 남편
최초의 독자이자 열렬한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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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쳤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작가와 기자
둘다 허기를 느꼈고, 양씨의 남편 심만수(48)씨를 끼워 저녁을 먹
기로 했다.

심씨는 출판사 '살림'의 사장이다. 살림은 90년 '희망' 이후
양씨의 모든 소설을 찍어내고 있다. 한마디로 부자다. 구기동 오
피스텔에서 평창동 고기집으로 이동하면서 기자는 처음으로 '체어
맨'을 얻어 타봤다.

"특별히 골랐습니다"란 말과 함께 나온 생고기는 때깔도 좋은
것 같았다.전날 과음을 했다는 심씨는 청하 잔을 계속 비웠고, 양
씨는 조금씩만 마셨다.

문단에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심씨는 원래 작가
가 꿈이었다. 경남 창원생으로 마산 대구 등지에서 20대까지 보낸
심씨는 다.

양씨가 등단하던 같은 해에 심씨는 '문학과지성'을 통해 데뷔
했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양씨와 결혼하고, 문예 계간지
기자를 10여년 하는 동안 별다른 작품을 쓰지 못했다.

이날 들은 에피소드 하나. 80년대초 한 문예잡지에서 둘 모두
에게 작품 청탁이 들어왔다. 부부는 더 이상 원고를 미룰 수 없었
던 어느날밤 결의를 다지며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다음날 아침
양씨는 단편 하나를 거의 완성했으나, 심씨는 그나마 써놓았던 첫
장을 반으로 줄여놓은 상태였다.

"최초의 독자인 셈이죠. 정말 열심히 읽어줘요. 그냥 '잘 썼다'
고만 하면 될 것을 가끔 이러쿵저러쿵 해서 탈이지만.".

심씨는 아내의 작품을 누구보다 좋아하는 것 같았다. 심씨가 80
년대 어이없이 끌려가 겪어야 했던 고문의 후유증을 형상화한 '천
마총 가는 길' 얘기에 이르자 "그걸 읽으면 아직도 눈물이 나요"
했다.

"두 분이 너무 닮으셨다" 했더니 "사람들은 하나도 안닮았대
요. 생긴 거, 경상도 전라도서부터, 성격까지도….".

그러나 기자는 둘이 만들어 오고 있는 세계가 부러웠다. 두 개
의 영토 아닌 하나의 세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