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형이상학 소설의 상징으로 꼽히는 '박상륭 문학'이
화려한 새 출발을 맞는다. 30년 동안의 캐나다 이민 생활을
끝내고 지난해 영구귀국한 작가 박상륭(57)씨가 24년만에 창
작집 '평심'과 산문집 '산해기'(문학동네)를 내주초 펴낼 뿐
만 아니라 생존 작가로는 드물게 '박상륭 문학제'가 23∼24일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다.

이 문학제는 작가의 대표작 '죽음의 한 연구'를 영상으로

옮긴 영화 '유리'(양윤호 감독) 상영을 비롯 무용과 마임극

공연, 문학 심포지엄 등으로 진행된다. 박상륭 하면, 누군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독자들이 더 많고, 문단 내부에서도

난해한 작가로 이름 높은 현역 작가에게 이처럼 성대한 문학

제가 바진 까닭은 무엇일까.한마디로 문화 예술계에 '박상륭

매니아'들이 만만치 않게 포진해있기 때문이다.예술의 전당은

문학제 취지문을 통해 '박상륭은 기독교, 불교, 샤머니즘의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한국 문학에서 독특하게 죽음에 대

한 관념 소설의 진경을 일구어낸 작가'라고 밝혔다.

현재 서울 광화문의 아파트에 사는 작가 박씨는 스스로를
"미친 늙은탱이"라며"이런 나에게 문학제라니 너무 과분하다"
고 말했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나와 지난 64년 등단한
그는 창작집 '열명길'(71년)과 장편 '죽음의 한 연구' (75년)
'칠조어론'(94년)을 '스스로' 펴냈을 뿐이다. 지난 97년 나온
작품집 '아겔마다'가 있지만, 이 책은 결벽증이 심한 작가가
마음에 들지 않아 버렸던 초기 단편들을 문단 후배들이 묵은
잡지에서 찾아 묶은것이다. 그래서 이 책엔 '출간에 동의해준
작가에게 고맙다'는 황송한(?)편집자의 말이 붙어있다.

그런 박씨 답게 모처럼 내는 창작집 '평심'에 대해서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내게 소설이란 하고 싶은 얘기를 담는 수레(승)일 뿐이
다. 나는 우주를 몸의 우주, 말씀의 우주, 마음의 우주로 나
누는데, 내 소설은 인간 영혼이 도달해야 할 마음의 우주로
가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잡설이 됐다.".

'평심' 수록작에 대해 그는 "선불교, 힌두교, 라마교의 가
르침을 융합한 것"이라고 밝혔다. 자아와 이성에 갇힌 서양식
'말씀의 우주'와 달리 무아와 공을 강조한 비서양적 생사관을
통해 '마음의 우주'를 성찰하자는 것이다. 그런 탓인지, 이
책에는 불치병 환자인 남편이 죽을 듯 하면서도 육신의 탈을
벗지 못하자 먼저 세상을 뜸으로써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난
노부인, 전신마비를 앓다가 죽음으로써 육신의 구속을 벗어나
불새가 되는 여인 등등이 등장한다.

"자연의 먹이사슬에서 우리는 살생이 있으므로 생명이 가
능하다는 것을 배운다. 그런 상극적 질서 속에서 삶과 죽음은
서로 어우러져 영혼의 연금술적 변전을 낳지 않는가.".

작가는 밴쿠버에서 15년 동안 서점을 운영했다. 그는 "로
맨스 소설따위는 팔지 않고 내가 읽고 싶은 종교 책들만 갖다
놓았다"면서 "물론 손님이야 많지 않았지…"라고 자랑스레 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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