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 할 일을 다했다."
지난 해 6월 후학을 위해 재단법인 청명문화재단을 설립한 직후, 임
창순옹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보유한 집과
땅을 판 것은 물론, 소장한 문화재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 양도해 만든
기금 20억원으로 후학들이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든
데 대한 자부심이었다.
노선비는 그러나 멈추지 않았다. 망구를 훌쩍 넘긴 나이, 친한 벗처
럼 자꾸만 찾아오는 육체적 질병에도 학문에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80년대 중반 내놓은 '한국금석집성 1'(금석집성·금석은 쇠나 돌로
만든 물건에 새긴 글자) 속편을 집필하기 위해 삼국시대 이후의 금석문
을 샅샅이 훑었다.
통일과 남북문제에 대한 관심은 지난 해 말, '통일시론'이라는 계간
지 창간으로 꽃폈다. 지난 7일 급작스럽게 입원하기 직전까지도 그는
'통일시론'의 원고를 꼼꼼히 살폈다. 우리 신문은 물론 일본신문까지도
읽으며 관련 기사를 편집자에게 보낼 정도였다고 제자들은 안타까워했
다.그 두번째 권인 봄호 발간을 며칠 앞두고 그는 표표히 떠난 것이다.
진정한 학자이자 선비의 모습을 육화했던 그의 삶의 최대 업적은 무
엇보다 사위어가는 한학 연구의 불을 지피고 댕겼다는 점이다.
4·19 교수단 시위주동 등을 이유로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에서 해직
된 그는 63년 서울 종로구에 태동고전연구회를 창립했다. 초창기 일반
인을 상대로 한 한문강좌에 주력했던 태동고전연구회는 76년 경기도 남
양주군 수동면지둔리 지곡서당으로 옮겨가면서 국학을 전공하는 인재
양성소로 변화한다. 우리 한학 연구의 최고 아카데미로 변신한 것이다.
지곡서당에서 배출한 제자 150여명은 국문학 사학 철학은 물론, 법
학 경제학 심리학 인류학 등 전 학문 영역에 퍼져 있다. 이곳서 배출한
교수만도근 40명.
지곡서당 1기생인 박한제(서울대) 이광호(한림대) 김종진(동국대)성
태용(건국대)교수를 비롯, 유초하(충북대) 이우태(서울시립대) 이영훈
김영하(성균관대) 김낙필(원광대) 지두환(국민대) 이광오(영남대) 임유
경(효성여대) 김영(인하대) 고재욱 이애희(강원대) 배경한(신라대) 안
병학 이헌창(고려대) 이기순(홍익대) 이내종(경산대) 정영근(서울산업
대) 황의열(경상대) 이일재 김만일(한림대) 이현식(서남대) 이봉규(인
하대)교수 등이 그들이다.
서울 태동고전연구회 시절에는 김정배 고려대총장, 김용구 조동일
정옥자(이상 서울대)교수 등도 수강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당시 200여수를 우리말로 풀이한 '당시정해'를 40여년만
에 다시 고쳐 출간하는 등 최근까지도 활발한 저술활동을 했다.'한국의
서예' '단권신역 옥루몽' 등도 냈다. 지난 해 9월에는 경복궁 흥례문
상량문도 썼다. 평소 뜻에 따라 고인은 화장된 뒤, 지곡서당이 있는 남
양주군 지둔리에 뿌려질 예정이다.
강직한 선비로 평생을 지낸 그가 가장 좋아했던 어구는 '매일생한불
매향'. 매화는 일생을 추위 속에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형준기자·hjshin@chosun 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