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지르기'의 철학자 이정우(40·전 서강대 교수)가 '시뮬
라크르의 시대'(거름간)를 내놓았다. 프랑스 후기 구조주의 철학
자 질 들뢰즈(1925∼1995)의 핵심저서인 '의미의 논리' 해설서로,
작년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특강형식으로 했던 강의록이다.

'가로지르기'는 97년 펴낸 그의 책 제목으로, 동서양 철학

이나 분과 학문을 가로질러 새로운 관점으로 사물을 보자고 제안

해 화제를 모았다. 그는 프랑스 철학과 동양철학을 접목하는 학

제간 연구를 시도하다가 학계 반발에 부딪쳐 작년 교수직을 그만

두었다.

"시뮬라크르는 사건이라는 뜻의 불어입니다. 들뢰즈는 전통
철학 관점에서 보면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던 순간적인 것들, 예
를들면 한가한 오후 어린아이의 울음,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났다
가 사라지는 슬픔과 기쁨, 홈런 타자의 활약에 열광하는 관중의
몸짓 등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사유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우리 삶은 사건과 이미지로 가득차 있고, 이것들은 각각 의
미를 가지고 있다. "날씨가 좋다"는 말에는 "나가서 놀고 싶다"
라는 의미가 담긴다. 후기 구조주의는 철학의 줄기를 이루어왔던
존재나 생성이 아니라 우연히 찰라적으로 일어나는 것에 나타나
는 의미와 구조를 다룬다는 설명이다.

그는 들뢰즈를 "21세기 우리 사유를 시도하기 위해 건너야
할 바다"라고 말한다. 파편화한 시대에 세계를 총괄적으로 사유
하고 있고, 서양철학은 하면 할수록 낯설어지는데 들뢰즈는 도자
나 불교와 비슷한 점이 있어 친근감을 느낀다고 한다. 세계는 기
의 움직임이자 의미라고 해석하는 그의 목적지는 자생적인 한국
철학의 세계다.

그에 대한 평가는 양극으로 엇갈린다. 젊은 연구자들로부터
는 "새로운 사상가 모델"로, 중진 이상 학자들로부터는 "삐딱하
고 이상한 친구"라는 말을 듣는다. "가로지르기는 다른 학문분야
를 침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화, 사회학, 역사 등의 일정한 부
분을 제 철학적 입장으로 통과해보자는 것이죠. 대중문화가 바로
이런 모든 것의 총합이기 때문입니다." 교수직을 떠난후 한동안
곤란을 겪었지만 이제는 자유롭고 깊이있는 저술이 가능해져 오
히려 좋다고 말하는 그는 앞으로 '우주 대서사시'라는 문학작품
도 생각중이다. 호메로스를 SF양식으로 옮겨 자신의 철학을 담을
계획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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