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기획 스페이스사업부 이혜진(32·서울대 산업미술과 85학번)씨
는 지난해 1월 차장이 됐다. 동기들에 비해 1년 반 빠른 특급승진. 사
내 처음 있는 파격인사였다고 한다. 팀내에서도 최연소. 그녀는 "'나
이 어린 여자 상관'이란 위치가 나를 직장내에서 여우처럼 행동하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현재 기획중인 프로젝트는 시드니올림픽 선수촌내 '만남의 광장'과
'삼성전자 홍보관'의 설계 및 운영. 방콕아시안게임 홍보관 작업에 이
은 후속타로 500만 달러가 넘는 대형 사업이다. 공간 설계부터 디스플
레이, 행사 기간 중 운영까지 총체적인 구성이 그녀가 속한 팀의 업무
다.이혜진 씨가 그실무 지휘자다.

처음에는 광고주인 삼성전자측에서 직접 연락하기를 꺼렸다. '500만
달러짜리 프로젝트 책임자가 갓 서른 지난 여자라구?'하는 불신감이
작용했으리라 짐작했다. 그녀는 "하지만 현장 대면접촉과정에서 불신
은 쉽게 신임으로 변했다"고 했다.

그 이유-. "40대 이전 여성들이 개인적인 능력으로 인정받았다면,
386세대는 여성들이 대거 사회로 진출해 '무리(군)'로 능력을 인정받
은 첫세대다. 즉, 일하기도 쉬웠고, 남성사회도 그들을 함께 일할 파
트너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성해방' 구호 뒤로 숨은 '남성차별'은 맘에 들지
않는다. "남자는 남자고 나를 포함해 여자는 여자다. 서로의 세계는
낄 수도, 깰 수도, 조절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차이는 있고, 장단
점도 존재한다. 이를 살리는 것이 오히려 여성파워, 남성파워가 아닐
까."그래서 출근 후 매일 다른 향의 커피를 끓이며 일과를 연다. 이유
는 "여자가 커피를 못탈 이유가 없다"다. 밤늦게 퇴근하면 공부중인
남편에게 메모를 남기고, 새벽5시에 일어나 아침을 짓고, 남편을 깨우
고 출근한다. 주말이면 시댁을 찾는다. 며느리를 반기는 시부모가 너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