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대하드라마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 미국촬영에 나섰을 때
일이다.
극작가 이철향씨 아들 부부가 애틀랜타에 유학중이었다. 신부가
시집가기 전 애지중지하던 애견 '요크셔테리어'를 꼭 좀 데려와달라
고 부탁을 했다. 그 요크셔테리어를 첫 촬영지인 LA까지 데리고 가는
데는 성공했다.
3일간의 LA촬영을 끝내고 다음 촬영장소인 애틀랜타로 가기 위해
공항수속을 하던 중, 공항직원이 문제를 제기했다. 자신이 보기에는
집이 작아 강아지가 불편해 할 것 같아 "이 상태로는 강아지를 보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난처해진 우리가 "다시 돌려보낼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더니 그 공항직원은 "내가 한 번 해결해볼테니 기다려라"
고 했다. 그 직원은 잠시후 어디선가 훨씬 큰 강아지집을 갖고왔다.
"자, 이제야 강아지가 서 있건 누워 있건 불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직원은 마치 자기가 강아지 주인이라도 되는 듯 만족한 표정으
로 수속을 끝내줬다.
그러는 동안 최소한 20여분 이상은 흘렀다. 그러나, 길게 줄지어서
우리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승객들중 누구 하나도 불평하거나 우리
를 불안하게 만들 눈총을 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직원이 큰 강아지
집을 마련해주는것을 함께 기뻐해주는 눈치였다. 사람도 아닌 강아지
때문에 기다려야 하는데도 밝은 미소를 잃지않던 다른 승객들의 그 환
한 모습 덕분에 우리의 미국일정은 내내 즐거웠다.
( 염현섭·50·KBS TV 드라마P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