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지 몰라도 빅토르 초이는 우리를 바
꾸었어요." 하얀색 겨울 궁전 에르미타쥬 미술관에서 만난 팬클럽 소
녀는 그렇게 말했다.

빅토르 최의 배지를 단 검은색 자켓 차림의 그녀는 인상파 화가의

사과와은 장도를 모사하고 있었다. "당신이 진정으로 빅토르의 혼과

만나기를 원한다면 울리짜 블리히나 15번지를 찾아 가세요. 그 러시안

락의 성지로. 어둠이 내리고 도시가 눈에 갇히기 전에 어서. 유리창

너머로 흐린 불빛이 새어나오는 지하 보일러실, 빅토르가 일하던 그곳

에는 아직 석탄의 불길이 거세게 타오르고 있을 거예요. 검은 빵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으로 밤을 새며 그곳에서 그는 우리를 위해 위대한

노래를 만들었답니다. 그 일은 이제 신화가 되었어요. 거리가 눈에 잠

기기전에 어서 쥐글리(택시)를 타세요. 신화를 만나세요.".

빅토르 최의 「아이들」은 거의 늘 그런 식이었다. 비밀결사의 점조
직처럼 홀연히 흩어지는가 하면 일사불란하게 대오를 만들었다. 밤이
면 빅토르의 팬들이 몰려드는 루빈쉬타이나 13번지나 락음악 상점이
있는 까라반나 22번지 같은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모든 거리와 골목이
그들의 영지였다.

하지만 막상 블리히나 15번지는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더구나 하늘
을 빽빽이 메우던 눈은 이내 시야를 지워 버렸다. 차가 신호대기로 설
때마다 기사는 유리문을 열고 울리짜 블리히나를 외쳐댔지만 그때마다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불길한 시대에 떠오른 그 예언의 목소리는
날아가 버린 새처럼 자취가 없었다. 어둑해질 무렵에야 겨우 「15」라
는 글자의 낡은 건물 앞에내릴 수 있었다. 그 건물로부터 뒷마당에 이
르는 벽은 온통 빅토르에 관한 글과 그림으로 광란의 캔버스였다. 문
을 열어준 보일러실 사내의 어깨 뒤로 과연 거세게 타오르는 석탄 불
길이보였다. 저 거센 불길이 불의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처럼 그를
불의가수로 몰고 갔을까. 지하감옥 같은 어둡고 비좁은 그곳은 밥 딜
런, 존 레논 같은 가수들의 사진으로 빈 데가 없었다.

"때로 그는 먹지도 자지도 않고 곡을 썼지요. 대개 화부일이 끝나는
늦은 밤에야 자기 일을 시작했어요. 그가 밤새 만든 곡을 새벽녘 기타
와 함께 허밍하는 소릴 듣는 것이 참 감미로웠어요. 그의 곡을 세상에
서 내가 맨 처음 듣곤 했죠." 그와 함께 일했다는 세르게이 피르소프
(40)의 말이었다. 벽에는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 찍은 「행복했던
날」의 사진도보였다. 그의 아내를 좀 만나보고 싶다고 했지만 사내는
난색을 표했다. 나의 거듭된 부탁에 겨우 전화를 돌렸지만 "남편에
관한 슬픈 추억들을 다시 들추고 싶지 않다"는 것이 그녀 마리안나
최의 답변이었다. 아들 샤샤가 아빠를 닮아 소년 음악가가 되어 지난
2월시내 스파르타 클럽에서 연주회를 가졌다는 것과 그 아이를 제2의
빅토르 최로 키우고 싶다는 것이 그녀의 꿈이라고 했다. 젊은 작가인
그녀는 두 해 전 빅토르 최가 이끌던 그룹 「키노」의 멤버 알렉세이
르이빈과 공저로 '빅토르 최 평전'을 펴낸 바 있다. 그 평전의 첫장
에는 빅토르의 반항적 옆모습과 함께 자신의 최후를 예감한듯 자필로
쓴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우리는 먼저 익은 열매, 사신은 우리
를 먼저 덮칠 것이다." 이런 글도 보였다.

"내가 사랑한 것은 레닌그라드(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달과 별, 나
는 모스크바를 싫어한다.".

싫어한다고 했지만 사람들에 떠밀려 결국 그는 정치의 도시 모스크
바로 갔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예수를 환호하듯 10만 군중이 그를 환
호했다. 그리고 두 달 뒤 예수보다도 훨씬 이른 나이에 그는 의문의
교통사고로 음악 생애를 접게 된다.

이른바 「빅토르의 제단」은 러시아 전역에 걸쳐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것이 모스크바 「아르바뜨」거리. 스따르이(old)와 노브
이(new)로 나누어지는 이 문화예술의 거리 끝부분 「예브게니 박땅꼬
바 극장」 건너편에 있는 이 제단은 그러나 제단이라할 만한 것이 못
된다. 빅토르의 초상과낙서로 어지러운 「빅토르의 벽」 한쪽에 만들
어진사방 1m 남짓한 작은 공간에 그의 사진과 담배, 꽃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을 뿐이다. 내가 그곳에갔을 때는 한무리의 검은옷 입은 청년들
이 꽃을 바치고 있었다. 제주는 체중 30킬로그램이 될까말까 하는 난
쟁이 청년. 헌화 후에 그들은 노래를 불렀다. 「혈액형」 「밤을 보았
다」「태양이라는 이름의 별」 「변화」 「우리 눈앞에」 같은 빅토르
의 노래 다음에 「한모금의 물」이라는 노래도 불렀다.

내게 한모금의 물을/한모금의 자유를
거리의 제단마다 타오르는 불길
꽃 대신 타오르는 불길
목이 말라/목이 말라
내게 한모금의 자유/한모금의 물.

체제가 바뀌었지만 러시아의 젊은이들은 여전이 목이 마르다고 했
다. 한모금의 물을 달라고 했다.

모스크바를 떠나오던 밤 불길한 꿈을 꾸었다. 하늘로 날아오르던 검
은새 한 마리가 총에 맞아 떨어지는 꿈이었다. 붉은 피가 흰 눈밭에
뿌려졌다. 실제로 원혼 같은 새의 울음이 천공을 때렸다. 문을 열고
훠어이 훠어이 쫓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몇 번씩 손짓을 했을 때야 새
는 떠나갔다. 새가 날아간 텅 빈 설원 위로 달빛만이 넉넉했다.

( 김병종·서울대 미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