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7월말 국내 침투 훈련을 모두 끝마치고 출발하려는데, 일본이
항복해버렸어요. 모두들 땅을 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조국을 되찾는 전
투에 한국인이 선두에 서야 국제사회에 당당히 할말을 할 수 있는데 말입
니다.".
상해 임시정부 수립 8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방한한 전 광복군 국내침
투 요원 윤치원(75·미국 시카고 거주)씨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안
타깝다"고 했다.
평북 의주에서 태어난 윤씨는 16살때인 1939년 만주로 가서 형이 운영
하던 가게에서 일하다 41년 임시정부 소식을 듣고 광복군이 되기로 결심,
45년 5월 중국 서안으로 가서 광복군이 됐다. 이어 국내침투 요원으로 선
발돼 3개월 동안 낙하산, 무술, 무전 훈련 등 한미합작훈련(OSS 훈련)을
받았다. 그는 "고향 평북 지역에 선봉으로 침투해 무전으로 부대를 유도
하려 했는데, 총 한번 쏴보지 못하고 광복을 맞아 억울했다"고 했다.
광복후 그는 종교에 귀의하기로 결심, 연세대 신학대학에 입학해 51년
졸업했다. 6·25때는 중공군 포로 신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목사 및
신학교 교사로 활동하다, 중국 만주지역 선교를 위해 80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
당시만 해도 중국에 가려면 미국 국적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의 가족들도 그와 함께 모두 미국으로 떠나고, 한국엔 조카 몇명만
살고 있다. 그는 미국 국적을 딴 85년 이후 지금까지 수백 차례 중국을
드나들었으며, 가끔 한국에도 들러 옛 동지를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