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한 섬마을을 온통 뒤집어놓는 유쾌한 '복권 소동' ##.

아일랜드 섬마을 툴리모어, 누군가 120억원짜리 복권에 당첨됐다.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챈 노인 재키(이안 배넌)와 마이클(데이비드 켈리)
이 '웨이킹 네드(Waking Ned Devine ·4월 17일 개봉)'의 주인공이다.이
마을의 인구는 불과 52명. 영리한 재키는 순진한 마이클을 부추겨 은밀
히 당첨자를 찾아나선다. 단지 호기심 때문에? 둘이 말하는 것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어떻게 해서든 미리 당첨자에게 잘 보여서 '떡고물'이라
도 얻어먹어 보자는 것.

비싼 물건을 샀다든지, 흥겨워 노래를 부른다든지 수상해보이는 이웃

들을 탐문하느라 술값 파이값을 날린 재키는보다 정교한 방법을 찾아낸

다. 평소 복권을 사는 17명의 명단을 확보한 것. 이들을 모두 초대해 닭

요리와 위스키로 대접을 하자 마을 사람들은 거꾸로 재키가 무슨 횡재를

한 것이 아닌가 의심할 지경이 된다.

그런데 설거지를 하다 잘 생각해보니 닭요리가 1인분 남았다. 한 사람
이 빠졌다. 네드 드바인. 폭풍우가 몰아치는 으스스한 밤 네드의 집을
찾아가니 이 노인네가 복권을 손에 쥐고 웃음을 머금은 채 죽어있는 것
이 아닌가.

이제부터 '네드 깨우기(Waking Ned)' 작전이다. 재키는 경찰에 신고하
자는 마이클을 만류해 네드 행세를 하라고 강요한 후, 마을 사람들을 불
러모아 공평하게 나누자고 설득한다.

그런데 그렇게 쉽게 120억원이 굴러올까?.

걸음도 제대로 못걷는 순박한 '중늙은이'들이 돈에 눈이 멀어 웃지 못
할 사기극을 벌이는 것일까?.

CF 감독 출신으로, 시나리오까지 쓴 커트 존스 감독은 이런 관객의 선
입견을 통쾌하게 벗어난다. 영화는 끝까지 웃음과 폭소를 놓치지 않고
흥미를 유발한다. 이웃을 의심해 벌이는 수색 작전에서 복권 사기극으로
확산되는 전반부에선 당첨자를 추적하며 가벼운 스릴을 맛보다가 후반부
의 문턱을 넘으면 온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사기극에 가담하게 된다.

즐거운 카타르시스 혹은 행복한 결말을 향해 거침없이 몰입시키는 힘
은 두말할 것 없이 아기자기하고 기발한 시나리오 덕이다. '잉글리시맨',
'브래스트 오프', '풀 몬티'를 잇는 영국산 코미디의 촌스럽고 순박한
전통에 조금도 모자람 없으며, 장난기로 치자면 '조지왕의 광기'나 '네
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에 못지 않다.

오토바이 누드 신과 마지막 장면의 공중전화 부스 신은 사전 설명없이
직접 봐야 되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관객은 노인들의 소동에 조금씩 웃
음짓다가 두번쯤 포복절도하게 된다.

늙은 닭처럼 긴 목에 꺼벙한 눈매를 이리저리 굴리는 마이클 역의 데
이비드 켈리(1929년생)는 영국에서야 유명하다지만 우리는 처음 만나는
명연기다. 작은 소재로 큰 재미를 만드는 독특한 섬문화의 유머를 유감
없이 보여주는 수작이다. 누군들 120억원짜리 복권을 꿈꾸지 않았으랴?
그렇지만 늙은 제국 영국, 그 안에서도 더 좁게 사는 아일랜드 섬마을의
복권 소동은 각별히 휴머니즘을 담기 좋은 그릇이다.

혁명은커녕 일상에 아무런 변화도 없는 노인들에겐 살아온 날보다 남
은 생이 더 적지만 날마다 복권을 사고 당첨되는 꿈을 꾸며 살아간다.꿈
꾸기에 인간적인 작은 섬마을의 순진한 욕망들을 유쾌한 휴머니즘이라
불러도 좋겠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나 '패치 아담스'같은 미국영화들
을 제치고 압도적으로 영국 박스오피스를 점령했으며 미국에서도 뒤늦게
개봉관 숫자를 늘려가고 있다. 9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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