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제된 독수리가 날개짓을 다시 시작했다? 코소보 사태로
독일이 2차대전후 처음으로 해외 군사 작전에 토네이도 전투기를
출격시키면서 등장하는 표현이다. 독수리는 독일을 상징하는 나
라새.
독일 의회와 내각은 최근 독일연방군의 나토작전 참여를 결
정, 최대 병력5500명, 전투기·전차 등 1900여 무기와 장비를 투
입할 채비를 차렸다. 독일 공군은 현재 16대의 토네이도 전투기
가 공습에 가담하고 있으며, 약 3000여명의 지상군 병력이 유고
인접 마케도니아에 전진배치돼 있다. 이번 작전은 물론 나토 13
개국 회원국의 일원으로 펼치는 공동군사작전이다. 그러나 2차대
전 중 나치군에 점령을 당한 경험이 있는 유고는 "독일이 나치의
망령을 되살리고 있다"는 비난과 함께 일방적으로 독일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독일 국내에서도 연방군의 나토공습 가담에 대
해 반대하는 의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정치가들(민사당 총
재 기시 등)은 코소보는 유고 내부 문제이며, 이번 나토 공습이
유엔의 승인 없이 이루어져 명백히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
난하고 있다. 또 독일이 과거사를 잊고 다시 전쟁을 주도하고 있
다는 비난이 일각에서 일고 있다. 그러나 여-야를 비롯한 정치권
의 시각은 코소보 알바니아인에 대한 인종청소는 어떤 희생이 따
르더라도 막아야 한다는 주장들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역사적으로 독일은 항상 주변국으로부터 유럽 안정을 위협
하는 세력으로 간주되어 왔고, 양차 대전의 주역이었다는 피해의
식으로 인해 군사문제와 관련해서는 늘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
던 것이 사실. 그러나, 독일은 통일 이후 동서 냉전 종식으로 인
한 변화된 안보환경에서 국제 평화유지 임무를 위한 해외 파병을
추진하기 시작해왔다. 연방군은 91년부터 캄보디아, 르완다, 소
말리아, 체첸, 조지아 등지에서 UN PKO(평화유지군) 활동을 해왔
으며, 특히 발칸 반도 갈등이 시작되면서 점차 해외 파병에 적극
성을 띠고있다. 특히 지난 94년 7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연방
군은 의회가 승인하는 한, 나토 역외의 국제평화 임무에 조건 없
이 참여할수 있고, 헌법에 따라 전투작전도 할 수 있다고 판결했
다. 이에 따라 95년 12월 이래 연방군은 보스니아 평화유지군
(SFOR)으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SFOR군으로 3000여명이 파병중
이다.
그러나 이번 나토 공습 가담은 종전 해외 파병의 양상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이제까지의 해외파병 임무가 주로 협
정 이행여부를 감시하는 경찰 임무 성격의 군사 안정화 작전이었
던 반면, 지금은 실제로 전투기를 동원하는 전투의 모습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군의 이번 나토 공습 가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과
연 통일된 독일이 전승국의 제약으로부터 해방되어 과거 전통대
로 군사대국화의 길을 가고 있는가. 이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전반적인 안보환경과 독일 내 관련 상황들을 입
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통일된 독일은 역사적으로 항시 유럽안보의 위협이 되어 왔
다는 인식 아래 그간 주변 강대국들은 독일의 군사대국화를 원천
적으로 막아 왔다. 55년 이후 나토 회원국인 독일은 국방을 전적
으로 나토에 의존하고 있고, 나토 국방예산의 약 20%가량을 담당
하고 있는 미국의 충실한 우방국이다. 연방군은 구성상 특징 중
하나로 다국적성(multinationality)을 들 수 있다. 연방군의 3개
군단 중 2개 군단은 다국적 군단(독-미, 독-네덜란드)이며, 그외
연방군은 독-불 여단, 유로 군단, 독-덴마크-폴란드 군단 구성에
도 참여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연방군의 독자적 군사 돌출 행
위는 근본적으로 상상할 수 없다. 또한 독일은 나토 가입이 결정
(54년, 런던 9개국 회의)됨과 동시에 핵 및 화생방무기를 생산하
거나 보유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핵강국의 위협도 원
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통일직전인 90년 9월 '2+4
협상'(양독+전승 4개국)에서는 장차 연방군의 병력 규모를 최대
37만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현재는 34만 병력수준이다.
이러한 외부적인 제약 이외에도 독일의 군사대국화를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은 EU 통합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EU
회원국들은 이미 단일 경제, 통화를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공동
의 외교안보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와 같이 군사력
을 바탕으로 한 민족국가간 패권쟁탈은 더이상 불가능한 것이다.
여기서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독일 스스로가 군사대국화를 걷
지 않으려는 내부적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왔다는 사실이다. 대
다수 독일인은 과거의 역사적 과오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독
일 교육기관이나 언론매체들은 과거 나치 만행상을 가감 없이 그
대로 국민에게 전달해 왔다. 특히 독일은 군사력의 정치도구화가
유럽의 재앙을 불러왔다는 인식 아래, 군의 문민 통제와 군의 의
회 통제란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제2의 나치군대 등장을 막고
의회차원에서 군을 감독, 통제하기 위해 59년 이래 의회내 군 특
명관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민간인 군 특명관은 군대 내 당면
실태, 군내 기본권 침해사례 및 지휘통솔상 문제점들을 파악하여
의회에 보고한다. 독일군 군사교육의 주요 부분은 민주주의에 대
한 확신과 제복을 입은 시민으로서의 군인상의 확립에 할당된다.
97년 9월 독일 언론은 일부 독일 병사가 외국인을 구타하는
등 연방군 내극우주의 경향이 있다고 집중보도를 한 바 있다. 보
도 직후 연방 하원은 즉각 국방조사위를 구성, 실태 파악에 들어
갔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군내에극우주의 관련 조직은 없으며 병
사 99명과 장교 2명이 극우주의성향을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후 연방군에 대한 정치교육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독일은 이와 함께 인접 국가와의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노력
을 기울여 왔다. 프랑스와는 엘리제 협정(63년)을 체결, 과거 불
편했던 양국관계를 청산했고, 양국은 80년도 중반 이후 지금까지
유럽 통합의 양대 축으로 긴밀한 협력을 과시하고 있다. 가장 피
해를 많이 받은 이웃 폴란드와의 관계정상화조약 체결(70년 12월)
에 이어 독일은 체코와도 우호조약(92년)과 화해 공동성명(97년)
을 나눴다. 특히 나토 동구 확대(97년 3월부터 폴란드, 체코, 헝
가리 추가 회원국 가입) 과정에서 보듯, 독일은 이들 동구국가의
서방 편입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확산시키려 노력하
고 있다.뿐만 아니라 독일은 군축과 군비통제 분야에서도 적극적
이다. 유럽 재래무기 감축협정(CFE)에 따라 가장 먼저 공격형 무
기들을 폐기했고, 최근 대인지뢰 금지협정 체결을 위해서도 주도
적으로 외교적 노력을 기우려 왔다.
안보환경의 근본적 변화에 따라 국방비 지출을 최소화하라는
국내 압력에 직면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요즘 군 개혁에 한
창이다. 대규모 병력 감축과 함께 징병제를 폐지하고 직업군인제
를 도입하는 추세다. 나토 19개 회원 국가들 중 아직도 징병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9개국(독일,이탈리아,터키, 그리스,덴마크,노르
웨이,폴란드,체코,헝가리) 뿐이다. 독일의 국방비도 최근 수년간
계속 감소되는 추세다. 현 슈뢰더 정부의 국방정책 근본 노선은
지역 갈등 해소를 위해 군사적 기능보다는 정치적 해결에 역점을
두고 있다. 대대적 군 개혁을 위해 올 봄부터 독일군은 군 구조
위원회를 가동, 장차 연방군의 규모와 군제, 무기체계 등을 검토,
2000년 가을까지 최종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할 예정이다.전통적으
로 독일은 재래무기분야에서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 수출금지법을 제정,공격형 무기들을 분쟁지역이
나 분쟁 예상 가능 지역에 절대로 팔지않는다. 이는 독일의 무기
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수단으로 쓰여서는 안된다는 철학이 반
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독일은 통일 후 연방군의 주요 임무를 영토방위나 동맹국에
대한 집단 방위 이외에도 지역갈등 해소를 위한 국제평화 임무도
적극 수행한다는 점을 못박았다. 따라서 이번 독일참전은 코소보
알바니아인에 대한 대량학살을 막아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독일은 슈뢰더 정부(사민당·녹색당 연정)가 출
범했다. 취임후 슈뢰더 총리는 과거 콜 정부의 대외정책 노선을
지속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토 회원국 간에
는 신정부의 나토 정책이 과거와 비교해 소극성을 띠거나 독자노
선을 걸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슈뢰더
총리는 차제에 나토 정책 결정을 적극 지지함으로써 독일의 대외
정책 노선에 대한 동맹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했을지도 모른
다.
결론적으로 이번 공습 가담을 두고 독일의 군사대국화를 우
려하는 것은 일종의 기우이다. 독일은 결코 재무장의 길을 걷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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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 참전 의의
베를린 EU 정상회담 진행 중 참전
영·불 등 유럽 강대국에 주는 의미 각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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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군'이라는 단어는 낯설다. 2차 대전을 소재로 삼은 영
화의 한 장면처럼 화석화된 단어다. 나치라는 20세기의 천형에
짓눌려 있었기에 독일은 군사 부문에서 그만큼 숨죽이고 살았다.
지난 3월 24일부터 개시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유고
공습에 독일군이 참전한 것은 뉴스였다. 그러나 독일군참전은 잠
시 주의를 끌었을 뿐 며칠씩 빅뉴스가 되지는 않았다. 독일의 해
외 파병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던 프랑스도 이내 담담한 표정이
다. 코소보 탈출 주민들의 비참한 상황이 더 크게화면을 뒤덮고
있고 우선 당장 발칸반도와 유럽의 장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미
처 독일군 해외 파병에 분석적 관심을 기울일 짬이 없을 것이다.
독일은 현재 나토 공습에 토네이도 전폭기 16대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이 작은 규모이지만 프랑스
와 엇비슷한 수준의 지원이다.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
에, 노르웨이, 캐나다, 터키,스페인, 덴마크, 포르투갈보다는 월
등 많다.
공습이 개시되던 날 게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집무실에서
중계된 TV 연설에서 "지금 이 순간부터 독일의 시민들은 우리 군
대와 함께 해야 할 것입니다"고 말했다.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
통령,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혹은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만 그렇
게 연설할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 유럽 주민들에게 오히려
새삼스러웠다.
이번 나토 공습은 베를린에서 유럽연합(EU) 정상회담이 진행
되고 있던 순간에 나왔다는 점에서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
리아 등 다른 유럽 강대국들에게 주는 의미가 각별하다. 또 예프
게니 프리마코프 러시아 총리가 평화 중재를 하기 위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 대통령과 협상을 한후 그 결과를 나토에 전달했
던 것은 슈뢰더 총리를 만난 자리였다.
나토 측이 밀로셰비치의 협상 조건을 일언지하에 거절, 프리
마코프의 여행이 허사가 되긴 했으나, 여느 때와 다르게 독일 총
리가 유고측 제언을 처음 전달받았다는 점도 범상한 일은 아니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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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독일 국민 반응
서독 찬성, 동독은 반대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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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유고 공습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슈피
겔지가 최근호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흥미롭게도 구 서독
지역과 구동독지역의 '민심'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나토
의 공습에대해 서독쪽의 64%가 지지의사를 표시한 반면 동독쪽은
58%가 반대 여론으로 나타났다. 토네이도 전투기의 참전에 대해
서도 서독주민은 69%가 옳았다고 찬표를 던진 반면 58%는 잘못된
결정으로 답했다. 지상군투입에 대해서는 서독(63%) 동독(74%)지
역 주민 모두 반대의사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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