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각국의 원수가 천국에 이르면 신은
일어서서 마중하는 것이 관례다. 드골이 죽어 천국에 이르렀는 데도
하느님은 뭣인가 내려 보는데 열중하여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천당의
문지기 베드로가 "교회의 장녀 프랑스 대통령입니다"해도 움직일 기
미가 보이지 않아 뭣을 내려다 보나 가보았더니 지상에서 벌어지고있
는 월드컵 결승전이었다는 것이다.

축구전쟁이 일어나고 실책 선수를 사살하는 등의 과열된 사커 내

셔날리즘의 폐단도 없지 않으나 그로써 애국심을 확인하고 분단을 아

물게하는 저력도 대단했다. 20세기 첫 개최국이 우루과이였다면 21세

기 첫 개최국이 한국이다. 의무와 자부가 새삼스러워지는 것이다..

"축구는 영원하고 진정한 평화의 이상을 튼튼하게 할 것이다.".

1926년 줄 리메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월드컵 출범 구상을
밝혔다. "3∼4년마다 열리되, 첫 예선 라운드에는 모든 회원국을 참
가시키고, 프로와 아마추어 선수간의 구별을 없앨 것이다.".

축구를 통해 인류 평화를 도모하자는 그의 꿈은 1928년 5월26일
연맹 총회에서 월드컵 탄생으로 이어졌다. 총회는 1930년 제1회 대회
를 가진 뒤 4년마다 한번 올림픽이 쉬는 해에 열기로 결정했다. 이탈
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헝가리, 스웨덴이 첫 개최를 희망했다.하지
만 이듬해 총회에서 우루과이가 첫 개최국으로 선정됐다. "우리는 독
립 100주년을 맞았다. 그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반드시 월드컵을 열고
자 한다. 참가 선수단의 여비와 체재비를 부담하겠다.".

우루과이는 1924년과 1928년 올림픽에서 축구 금메달을 딴 축구
강국이었다. 줄 리메 회장은 높이 약 30센티미터, 무게 약 4kg의 황
금여신상(줄 리메 컵)을 만들었다.

비행기 여행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유럽 선수들은 배로 한
달 반이나 걸려 우루과이에 도착했다. 선수들은 여행 도중 선상에서
공을 가볍게 다루면서 몸을 풀었다. FIFA와 갈등관계였던 잉글랜드등
영국 4개 축구 협회가 월드컵을 보이코트했고, 장거리 여행을 꺼려한
유럽 강호 일부도 불참했다.

우루과이 월드컵은 13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7월14일 몬테비데오
에서 드디어 막을 올렸다. 주경기장이 미처 완공되지 않아 보조 경기
장에서 개막식을 가졌고,개막 5일 뒤에야 주경기장을 사용할 수 있었
다. 원래 첫 경기는 개최국 차지였으나, 프랑스 혁명기념일을 맞아
프랑스와 멕시코전을 개막 경기로 열었다.

주최국 우루과이는 강호들을 연달아 격파한 뒤 결승에서 아르헨
티나와 만났다. 경기 시작 전부터 신경전이 벌어졌다. 어느 나라 축
구공으로 경기를 하느냐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전반은 아르헨티나제,
후반은 우루과이제 공으로 합의했다.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와 밀고
밀리는 공방전을 펼친 끝에 4-2로 승리, 줄 리메컵의 첫 주인이 됐
다.열광과 환희가 우루과이 전역을 휩쓸었고 이튿날은 공휴일로 선포
됐다.

우루과이 월드컵엔 불참국이 있었지만, 이제 월드컵 불참이란 상
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인류는 4년에 한번 조국의 월드컵 본선진출
여부에 일희일비한다. 지구촌 시대를 본격적으로 제시한 20세기 역사
에서 월드컵이야말로 세계화의 진면목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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