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메시 서사시(샌다즈·이현주 옮김·범우사)
●결혼을 향하여(존 버거·이윤기 옮김·해냄)
●인간 속의 악마(장-디디에 뱅상·류복렬 옮김·푸른숲).
'길가메시 서사시'는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도시국가 우
룩을 다스린 위대한 왕 길가메시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이다. 생명,
사랑, 죽음, 투쟁 등을 다룬 인간의 모험 과정이 사뭇 매력적이다. 20
년전에 처음 읽은 그것을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다시 읽곤 한다. 세
상이 한없이 조악하고 혼란스럽게 느껴질 때, 그것을 읽고 나면 온몸
의 불순물이 말끔히 제거되는 것 같다. 고전을 읽는 마음, 일종의 귀
소본능같은 것 아니겠는가.
'결혼을 향하여'(존 버거·이윤기 옮김·해냄)는 인간의 호흡처럼
지극히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읽히는 소설이다. 이윤기 선생의 역자 후
기가 퍽 인상적이다. 소설에 전념하기 위해 당분간 번역을 접어둘 참
이었는데 그만, 이 작품의 흥미진진한 내용과 간결하고 아름다운 문장
에 넘어가 번역을 해버리고 말았다는 것. 소설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한 수 가르침을 받을 수 있을 만한 작품이다.
'인간 속의 악마'(장-디디에 뱅상·류복렬 옮김·푸른숲)는 독서과
정보다 그것을 읽고 난 뒤부터 떠오르게 되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으로
한동안 정신이 멍해지게 만드는 독특한 이론서이다. 악마야말로 인간
에게는 필요악적 존재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지피지기 백전불태'의
전략적 차원에서. '착한 것이 무조건 좋다'고 믿는 어리숙한 심성의
소유자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지금. 지상의 온갖 악마들이 준동
하는 살벌한 세기말 아닌가.
( 소설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