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3일 만주 북간도 용정에서 조선독립 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다. 서울의 3·1운동 소식을 접한 이곳 독립운동 유지들이 이날
서전 벌판에서 고국의 독립선언을 축하하는 군중집회를 열었다. 3만명
이 참가한 집회였다.
군중들은 "아 조선민족은 민족의 독립을 선언하노라…"로 시작되는
독립선언 포고문을 낭독한 뒤 용정 시가지로 행진해갔다. 일경은 무차
별 사격을 가했다. 공덕흡 등 19명이 순국했다. 이 운동은 해외 독립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만주와 연해주에서 항일 무장투쟁이 시작된 결
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운동을 주도한 사람은 규암 김약연 목사와 초대 연변대 총장을
지낸 임민호 등이다. 일찍부터 신학문에 눈뜬 규암은 만주 독립운동의
요람이었던 명동촌의 중심인물이었다. 이곳을 개척하고 명동학교와 교
회를 세워 젊은이들에게 독립 의지를 심어주는데 앞장섰다.
중국 5·4운동에 많은 영향을 준것으로 평가받았던 이 운동은 그러
나,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로 바뀌면서 자연 잊혀져갔다. 조선족들의 운
신의 폭이 좁아진데다 문혁 기간에는 심한 박해까지 받았다. 임민호는
소련 유학을 한 '죄'로 홍위병들에게 길거리로 끌려다니다 참살당했
다.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부인 김찬희는 정신이상을 일으켜 사망했다
고 한다.
역사의 그늘에 가려졌던 이 운동은 중국이 변하면서 다시 우리의
현대사 무대에 드러나게 되었다. 독립만세 함성이메아리쳤던 서전 벌
판 자리에는 '3·13 반일의사릉'이 세워졌다. 엊그제는 80년만에 처음
국내 인사들까지 참가한 가운데 성대한 기념식이 열렸다. 독립정신을
기리는 것도 시대와 체제를 타는 것일까. 이런 운동을 잊지 않고 이어
가는 것 자체가 독립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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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면봉○.
--김대통령, "정책혼선 장관은 확실히 책임져라." 여당 문책인사때
알아봤지.
--대검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 백서', 성폭행 여학생 신원 공
개.절대 안심 못하겠소.
--노르웨이 첫 여성 국방장관 탄생. 군가는 '진짜 사나이'에서 '여
군 미스 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