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 모 건설회사 마닐라지사에 근무했다. 어느날 서울에서
출장 나온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현지 합작회사 L사장과 함께 '마드
리드'란 레스토랑에 갔다.
마드리드는 마닐라에서도 아주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고급 스페
인 식당이다. 정장 차림이 아니면 출입을 할 수 없는 곳으로 유명하
다. 세계 각국의 귀빈이 다녀가면 그 나라 국기를 식당벽에 걸어주
는 전통도 있다. 식당 가운데 걸려있는 태극기를 보면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그런 곳이다.
마침 동행한 L사장은 마드리드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었다. 우리
는 비교적 좋은 자리에 안내 받아 흐뭇한 기분으로 담소를 시작했
다. 그러나 우리가 접대해야 할 서울 손님은 의자에 앉자마자 구두
를 벗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양말마저 발바닥까지 말아 내리
고 큰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울손님의 고함에 가까운 목소리를 제지할 수 있는 입장
이 아니었다. 계속 불안한 마음으로 듣고 있었다. 웨이터도 먼 발치
에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애원'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서울손
님은 자신의 말에 도취돼 계속 열을 올리다가 마침내 "칵!"하는 소
리와 함께 옆에 놓인 화분에 가래침을 뱉는 것이 아닌가.
웨이터가 달려왔다. 웨이터는 화를 내며 "나가달라"고 명령했다.
L사장이 지배인에게 통사정을 하고, 옆 테이블 손님에게도 정중히
사과해야 했다.
정말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부끄러운 사건이었다.
(이진웅·59·가자주류 여의도점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