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고 빛 바랜 원고지 위의 단정한 글씨, 한 줄의 시 구절을 얻기 위해
고심을 거듭하며 고쳐쓴 결벽한 정신의 흔적을 보노라면 그의 비참했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와했다', 이렇게 읊던 시인은 모
진고문과 생체실험 의혹 속에 이국 후쿠오카(복강) 형무소에서 비명에 갔
다.

일제 말 암흑기에 '서시' '별 헤는 밤' 등 주옥같은 시편들을 남기고
간 시인 윤동주(1917∼1945). 비록 짧았지만 그가 생전에 남긴 모든 육필
원고들이 후손에 의해 곱게 간직됐다가 사진을 통해 그대로 독자들에게
공개됐다. 지난 주 민음사에서 발간된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 전집'이
다. 지금까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미공개 시 8편을 모함한 모든 시-산
문, 심지어 책을 읽다가 끄적인 낙서에 이르기까지 윤동주가 남긴 육필
원고들을 한권에 망라한 것이다. 국내에서 한 작가의 모든 원고를 사진판
으로 복원시켜 전집을 내는 것은 이번이 출판사상 처음이다.

'시란? 부지도' '생존' '생활' '힘'….

윤동주의 대표작 중 하나인 '참회록' 원고의 아랫부분에 적힌 낙서들
이다.

'사진판 윤동주…'의 가장 큰 감동은 역시 민족사 아픔의 상징처럼 돼
버린 윤동주의 작품을 그 자신의 체취가 담긴 친필로 읽을 때의 뭉클함이
다. 원고에는 모든 퇴고 과정, 창작 중의 단상, 사소한 낙서까지 낱낱이
나타나 있어 활자화된 시집에서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그의 정신세계가 손
에 잡힐 듯 구체적으로 와 닿는다.

'아우의 인상화'에는 '모욕을 참아라'라는 메모가 적혀있어 창작 무렵
(1938.9.15)의 내적 고민을 가슴 아프게 일깨운다. 유명한 '별 헤는 밤'
의 마지막 행 '그러나 겨을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무덤 우에
파란 잔디가 피여나듯이/내일흠자 묻힌 언덕우에도/자랑처럼 풀이 무성
할게웨다'란 귀절은 창작일(1941.11.5) 표시 뒤에 씌어있어 시인이 이 작
품을 일차 완성한 후 첨가한 것임을 보여준다. 윤동주는 자신이 사숙했던
정지용이나 백석의 시들을 읽으면서 '호방!' '걸작이다' '생각할 작품이
다' 등의 메모를 하기도 했다. 일본 유학 전 쓴 '못 자는 밤' 원고에는
'미를 추구하면 할수록 생명이 하나의 가치임을 알겠다'는 말이 일본어
로 씌어있기도 하다.

'사진판 윤동주…'는 이런 감흥을 뛰어넘어 학술적으로도 중대한 의미
를 갖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모든 육필원고가 공개됨으로써 이제 비로
소 윤동주 시의 정본이 무엇인지 확정할 수 있게 됐다는 것. 그동안 윤동
주 시집이 몇차례 출판된 바 있지만 무리하게 표준어로 바꾸거나 일부 작
품을 누락시키는 등 원본의 현장성이 훼손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
는 유독 기초작업이 부실한 우리 근-현대문학사 연구에도 큰 자극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사진판 윤동주…'의 편집과 주석, 본문 확정 작업에는 북간도 용정의
윤동주 묘소를 처음으로 찾아내 한국에 소개한 일본 와세다 대학의 오오
무라 마쓰오 교수, 단국대 왕신영 교수, 연세대 강사 심원섭씨, 그리고
윤동주 조카인 성균관대 윤인석 교수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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