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교수가 논문 이외에 쓰는 글들은 잡문이라고 여겨져 학자들에게
외면당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잡문도 잡문 나름이지 근래에 내가 읽은
잡문들은 지식인이나 학자연하는 사람들이 모두 읽어 볼 필요가 있는 글
들이다. 그것은 이 글들이 지식인의 객관적 자기 성찰과 비판적 사회참
여의 문제의식을 솔직히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반성을 촉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근래에 출간된 책에 실린 잡문의 장본인들은 누구인가.
김영민, 김동춘과 조희연, 강준만이다. 이들은 모두가 동시대 비판적 지
식인들이다.
먼저 김영민 교수를 보면 정갈하고 창백한 선비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나 본 것은 3년전 어느 세미나에서였다). 이 문사적
지식인은 그의 잡문 모음 책 '문화, 문화, 문화'에서 '슈퍼마켓 점원'같
은 교수와 '조직폭력배'만도 못한 교수사회에 따끔한 회초리를 가한다.
즉그는 수입담론에 기생하는 기치촌 지식인의 허위의식과 원전 및 논문
중심주의적 글쓰기를 비판하고, 학문의 탈식민성을 주장한다. 나아가 그
는 지식의적실성과 학자의 지적 성실성을 강조하며, 앎과 삶을 아우르는
주체적, 자생적 담론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신토불이적 나르시즘
에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김동춘 교수와 조희연 교수는 참여 지식인이다(나는 김교수를 모 잡지
편집위원시절부터 알고 있다). 이들은 '2000년, 이 땅에 사는 나는 누구
인가'라는 책에서 비판사회과학이론 학습과 현실참여에 있어서의 자신들
의 지적 고민의 여정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비판이론과 실
천을 상아탑과 동시에 현장에서 구하며 민주시민사회를 위해 행동하는
동시대 대표적인 좌파지식인들이다. 이들은 자본의 논리, 가족중심주의,
빈곤의 세계화, 지식정보사회의 지배에 대항하여 시민 '연대'를 호소한
다. 한편 이 책에는 특수성과 보편성, 보수와 진보 등의 주제에 대한
다른 필자들의 서로 다른인식과 담론을 보여주고 있다. 이진우 교수의
글은 김영민 교수의 글과, 공병호 박사의 글의 김동춘 교수의 글과 비교
하면서 읽으면 흥미롭다. 보수와 진보는 상호 견제하며 공존하는 것이
보기 좋다.
끝으로 강준만 교수는 전사적 지식인이다. 그는 강단 있어 보이고 눈
빛도 강렬하다(팩스로 서로 인사 정도 했을 뿐이지 난 그를 직접 본 적
은없다). 강교수는 '인물과 사상' 최근호에서도 그가 보수라고 생각하는
언론과 학자들에게 전면전과 같은 맹비난의 포격을 가한다. 그런데 왜
응전이 없을까?.
나는 비판적 지식인들을 좋아한다. 그러나 정치적 당파성으로부터 자
유스러운 비판적 지식인들의 잡문을 좋아한다.
(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