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 없이 보편적 가치도 없다"...유교적 가치 강조 ##.
인문사회과학계에서 학술계간지 '전통과 현대'가 차지하는 위상은 독
특하다. 진보도 아니고 딱히 보수도 아니면서 첨단이 판치는 마당에 '전
통'이라는, 철지난 듯한 화두를 들먹인다. 게다가 그 동인 대부분은 유
학파이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신촌의 한 음식점. 학술 계간지 '전통과 현대'
동인들은 갓 출간된 99년 봄호를 받아들고 창간 이래 볼수 없는 감회에
젖었다. 내부 사정으로 작년 겨울호가 못나왔으니 사실상 재창간호나 다
름없었다. 작년 9월 '전통과 현대' 산파 중 한사람인 황인하(당시 대우
자동차 부장)씨의 죽음으로 한때 소강상태에 빠졌던 이 모임이 새출발을
다짐하는 자리였다.
97년 창간된 '전통과 현대'는 민주화 운동세력과 해외유학파의 기이
한 만남으로 시작됐다. 서울대 사회학과 77학번으로 운동권에 깊이 관여
하다가 대우그룹에 입사한 황인하씨가 어느날 연세대 함재봉 교수를 찾
았다. "한사회를 뒷받침할 사상이 없는한 운동도 모래성에 불과함을 깨
달았다. 마르크시즘도 외래사상에 불과했다. 30대들에게 원동력을 제공
할수 있는 사상을 찾아달라.".
함교수(연세대·41·정치학)를 비롯, 유석춘(연세대·44·사회학), 김
병국(고려대·40·정치학), 이승환(고려대·43·철학), 유홍림(서울대·
38·정치학), 김석근(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40), 김형철(연세대·철
학·40), 김문식(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37), 장현근(용인대·중국
학·36)씨 등이 모였다.
출발 당시 모임은 과거 고위관료 자제들이 주도를 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유석춘(박정희대통령때 청와대 정무수석 유혁인씨 아들·일리노
이대 박사), 함재봉(아웅산에서 순직한 대통령 비서실장 함병춘씨 아들·
존스홉킨스대 박사), 김병국(인촌 김성수 선생 손자·하버드대 박사)교
수등은 민주화운동이 거셌던 80년대초 유학을 떠났던 사람들이었다. 이
들은 전통사상의복원에서 우리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화두를 들고 돌
아왔다. 90년대 초반까지도 중도를 표방하기조차 힘든 학계 분위기였다.
이들은 좌파들로부터 보수 우파라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떳떳했고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보편'이라는 미명하에 수입된 서구이론들은 한국사회의 특유한 동
인들을 밝혀주는 데 실패했다. 이제 전통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는 가운
데 한국의 특수성에 기반을 둔 보편적인 가치를 창출해야 할 때다." 편
집주간 함 교수는 창간호 서문에서 '전통과 현대의 창조적 만남'을 선언
했다.
이들은 '유교와 21세기 한국', '한국전통사상과 자본주의', '다문화
주의시대의 전통문화', '전통교육과 현대교육', '한국민간신앙의 저력'
등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수입학문'이 판치던 상황에서 이들이 제기한
'유교 자본주의' 패러다임은 창간호가 5천부나 팔릴 정도로 학계의 눈길
을 끌었지만 비판도 뒤따랐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이냐"하는 반발이
많았고, 이들의 출신배경까지 들먹이는 경우도 있었다.
IMF를 맞아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이
들은 옹호측 입장에서 논쟁을 주도했다. "경제위기가 투기적 금융자본의
교란에 의한 것일뿐 아시아적 발전모델은 유효하며 오히려 위기에 처한
세계경제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수 있다"면서 "인본주의, 공동체주의,
가족주의, 교육 숭상 등 아시아적 가치가 세계적 보편적 가치가 될수 있
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요즘 '유교 민주주의 선언문' 작성에 힘쓰고 있다. 경쟁에 입
각한 서구의 자유민주주의나 사회민주주의 대안으로 유교적 가치를 제도
화하자는 움직임이다. 빠르면 올해안에 한국이나 워싱턴에서 국제회의를
열계획이다.
서구 개념을 사용해 그들만큼 유창한 영어로 유교적 가치를 설명할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또다른 강점이다. "다들 민주화운동을 할 때 유학을
갔다는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 빚을 갚기위해 대중에 더 다가가고
현실에 뿌리를 대려고 애쓴다." 이승환 교수의 말은 다른 동인들에게도
적용된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패러다임이 아직은 가설단계라는
자평을 잊지않는다. 진보와 보수, 한국과 세계, 아카데미즘과 현실이란
복잡한 함수 속에서 제자리를 찾으려는 이들의 고민은 곧 새로운 세계를
앞둔 우리 학계의 고민이기도 하다. (0344)906-8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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