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가장 큰 사건은 DNA를 발견했다는 것이예요. 인간을 신학적,
철학적, 정치적으로 접근했던 것과는 달리 물질로서의 인간을 인식하게
됐어요. 인간의 설계도를 드러낸 DNA 이전과 이후의 철학과 예술은 분명
히 다를 수 밖에 없어요. 이같은 최신 과학의 세계를 다룬 미발표 단편들
이 몇편있어요. 적당한 시기에 발표할 생각입니다.".
'광장'의 소설가 최인훈(63)씨가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았다. 지난
59년 '자유문학'에 단편 '그레이구락부 전말기' '라울전'을 발표,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분단시대 지식인 소설의 전범으로 꼽혀왔다. 현재
활동 중인 작가라면 문학 청년 시절 최인훈 문학의 세례를 받았고, 현재
서울예전 문예창작과 교수인 그의 지도를 받은 소설가만해도 50여명이나
된다. 하지만 그는 "데뷔 40주년이라고 해서 뭐 특별한 행사를 생각한 적
도 없고, 문단 동료나 후배들에게서 그런 제의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담
담하게 말했다. 얼마전 가수 패티 김의 노래 40주년 기념 공연이 열렸던
것을 떠올리면, 한 작가의 창작 40주년이 상대적으로 쓸쓸해보인다.
지난 94년 최씨는 20년 동안의 침묵을 깬 장편 '화두'를 펴낸 이후 또
다시 신작 발표를 중단한 상태다. "내 평생 화두가 바로 화두예요. 문학
은 화두에 대한 자기 안에서의 질문과 응답이란 분자 구조로 이루어졌지
요. 제게는 문학이라는 영원한 수수께끼를 오래 생각하는 재주 밖에 없어
요. '화두'이후 화두를 더 농익혀서 독자들에게 내놓고 싶습니다.".
최씨는 현재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둔 미발표 단편들에 대해 "유전공학
과 생물학을 다뤘다고 해서 SF소설처럼 쓴 것은 아니지만 리얼리즘 수법
에서 벗어난 과감한 작품들"이라고만 밝혔다. 그는 4차례나 고친 대표작
'광장''에 대해 "내가 살아있는 동안 글자 한자라도 다듬어서 미래 독자
들에게 주는 것이 내 의무"라며"이명준의 선택이야 당시 독자들과 공유하
는 역사적 약속이니까 수정불가능이지만, 수사학적 표현을 계속 고칠 것"
이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명준이 그냥 그 배를 타고 갔으면
됐는데…마치 첫 사랑에 실패했으니까 달도 해도 안보였던 청년처럼 외곬
수였던 거지요. 그렇지만 이건 지금 이야기이고, 수정불가능이 인생의 무
서움이 아닌가해요. 죽은 이명준은 결코 되돌아올 수 없고, 누구나 그렇
게 살다가 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바람직한 생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인간이고 문학이예요.".
최씨는 남북 통일에 대해 "내 관심은 통일이 아니라 평화유지"라며"어
떻게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고 말했다. "다시는 6.25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지요. 지금 코소보 내
전을 보세요. 비참하고 어리석은 일이지요. 우리 6.25도 당시 세계가 그
렇게 보았을 겁니다. 그런데 강대국이 한국의 긴장이니 핵무기 사용도 배
제하지 않는다는 둥 하는 것을 보면 인간적인 분노와 모욕감을 느낍니
다. 20세기 한국 작가들을 지배했던 변경의식은 21세기에도 크게 달라지
지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어예술가라면 그같은 비예술적 구속도 다 껴
안아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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