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여성해방의 선구자.' 여자 마라톤 세계 최고기록(2시간20분47
초) 보유자 테글라 로루페(26)는 고향에서 그렇게 불린다. 1m50에 40㎏
에 불과한 이 작은 마라토너에겐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표현이다.
그러나 그녀는 94, 95년 뉴욕마라톤을 연속 제패했고 97년 세계하프
마라톤, 98년 로테르담마라톤을 차례로 정복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로루페는 두 발로 케냐의 여성 차별 풍토에 정면 도전
했다. 그리고 세계 마라톤을 제패함으로써 해방을 이뤘다.
그녀는 케냐 평원에서 소를 치며 사는 보코트족 출신이다. 나이로비
에서 북쪽으로 640㎞나 떨어진 카펜구리아라는 마을의 가난한 유목민
7남매 중 둘째였다. 부모들은 "집에서 동생이나 돌보라"고 했지만 악착
같이 학교를 다녔다.
통학과 소떼를 모는 것 자체가 연습이었다. 학교까지는 10여㎞. 지
각한 벌로 매를 맞지 않기 위해 숨이 차도록 달렸다. 들판에서 소떼를
몰며 매일20㎞씩 야산을 오르내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육상을 하려 했지만 케냐 육상 연맹은 "시간 낭비일 뿐"이라며 코웃음
쳤다.
92년 18세 때 나이키 지원을 받아 독일로 건너간 로루페는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케냐 남자 선수들 숙소에 얹혀 살며 계속 달렸다. 93년 세
계선수권 1만m에서 3등을 한 로루페는 이듬해 뉴욕마라톤에서 우승, 아
프리카 출신으론 처음으로 여자마라톤 메이저대회를 제패했다. 고향에
돌아오자 남자들의 태도는 '천시'에서 '존경'으로 바뀌어 있었다. 특히
동네 아낙들은 "여자들이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줘 고맙
다"는 인사를 아끼지 않았다.
로루페는 그동안 40여만달러의 상금을 벌었다. 가난에 찌들었던 부모
는 수만평의 땅을 갖게 됐다. 두 발과 고집으로 가난과 사회적 관습을
함께 극복한 셈이다. 그녀는 4월18일 로테르담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벽에 도전한다. 2시간20분대를 깨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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