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블시절 긴자는 밤이 더 화려했다. 긴자 남쪽 7-8초메(정목)
지역은 고급클럽들이 밀집해 있다고 해서 '클럽가'로 불리는 곳.

70년대 중반이후 이곳의 주인공은 부동산업자와 사용족(회사
돈으로 흥청망청 쓰는 족속)이었다. 버블호황을 주체못하던 '거
품인간'들이 밤마다 불나방처럼 몰려들어 거품의 향연을 벌였다.

버블시절 고급클럽의 술값은 1인당 20만엔(약 200만원)에 달
했다. 대졸 신입사원의 한달 월급이었다. 호스티스 경력 9년째
의 후쿠다 리에(34)씨는 "한병에 100만엔 받는 로마네 콘티 와
인을 하룻밤에 9병 비우고 1150만엔을 치른 고객도 보았다"고
전한다.

버블 막바지이던 지난 91년 긴자엔 3000여개의 클럽이 있었
다고 한다. 호스티스만도 3만6000명에 달했다. 하지만 버블붕괴
와 동시에 밤의 경기도 싸늘하게 식어갔다.

손꼽히던 명문클럽 '준'의 폐점은 상징적인 사건으로 꼽힌
다. 정-재계 거물들이 단골로 드나들던 '준'은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고 92년 봄 문을 닫았다. 이를 시발로 매년 200∼300개꼴의
클럽이 긴자에서 사라지고 있다. 클럽 술값은 점점 내려가 전성
기의 4분의1 수준까지 하락했다. 그래도 절반은 적자라는게 클
럽가의 정설이다.

대신 '카바클라'(카바레와 클럽의 합성어)라는 가격파괴 술
집이 속속 긴자에 진출하고 있다. '명랑회계'를 외치며 시간당
1만엔의 요금을 받는 카바클라는 30∼40대 샐러리맨들로 문전성
시이다. 클럽가 한복판에 5개월전 개업한 '아이리스 세토루'의
다카하시(31) 사장은 "우리가게 손님은 대부분 '자기 돈으로 술
마시는' 샐러리맨들"이라고 말했다.

(* 동경=박정훈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