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이간전략 ##.
사뮤엘 버거 주한 미국 대사는 딘 러스크 국무장관에게 올린 1962년
7월23일자 보고서에서 아주 묘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한편, 우리는 지난 두 달 동안 우리가 취한 조치에 대해서 한국 정
부안에서 불만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있다. 김종필은 '미국 사람 몇 명'
을 손 볼 것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 다른 소문은 박정희가
정일권주미 한국대사에게 편지를 보내 버거 대사를 소환시키도록 공작
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정일권 대사는 '그런 일은 불가능하고 만약
그렇게 하도록 명령한다면 나는 사임하겠다'고 대답했고 박정희는 '없
던 일로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루머의 신빙성에 대해서 확
인할 입장이 아니지만 그들이 나를 PNG(Persona Non Grata=기피인물)로
선언할 것을 검토한 적은 있다고 본다.
최근 정보에 따르면 박정희 주변 인물들은 나와 그가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믿을 만한 한
국인 정보원에 따르면 밴 플리트 장군은 박정희와 김종필을 만났을 때
나에 대해서 아주 나쁜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런 행동은 사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1962년8월5일 딘 러스크 국무장관은 버거 대사에게 훈령을 보내 대
한정책 지침을 전달한다. 러스크 장관은 먼저 '우리는 박정희나 박정희
가 선택한 인물이 앞으로 수년간 한국의 지도자가 되는 상황을 받아들
일 각오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박정희는 이 나라가 필요로 하는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면서 '그는 지능, 비전, 접
촉의 범위, 강력함, 개인적 평판, 권력의 행사(특히 군부에 대해서)에
있어서 충분한 자질을 갖고 있다'고 평했다. 러스크는 '우리는 박정희
를 묵시적으로 지원하면서 이런 지원을 이용하여 그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했다.
러스크 장관은 또 김종필 정보부장의 영향력을 약화시킬 방도에 대
하여 길게 설명했다. 그는 '근대국가에서는 첩보조직과 비밀경찰의 우
두머리가 동시에 핵심 정책수립자이자 제2인자여선 절대 안된다는 사실
을 명백히 하라'고 지시하면서 '김종필 부장이 주일대사로 나가는 식으
로 정치현장을 떠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러스크는 이어서 '박정희 의장에게 제1인자와 측근의 차이를 설명해
줄 필요가 있을 것이다'고 권고했다. 그는 '제1인자는 국정의 모든 분
야에 대해서 최종적인 법적 조치를 할 권한을 갖고 있는 데 대하여 측
근은 주어진 임무만 수행하는 존재이다. 만약 이러한 구분이 애매해지
면 제1인자의 권력은 약화된다. 따라서 김종필이 전문 분야에만 전념하
는 것이 필수적임을 박정희에게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했다. 러
스크 장관은 버거 대사가 김종필 부장과는 정보 이외의 업무에 대해서
는 대화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것에 찬동하면서 '그런 단호한 조치에
대해서 반발이 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고 안심시켰다.
정보부 제6국은 국내 정보 수집과 특명 사건 수사를 맡았다. 특별활
동국이라 불린 6국의 국장은 방첩대 출신 육사8기생 전재구였다. 그는
정보부가 워커힐 위락시설 건설과 새나라 자동차 공장 건설까지 지휘하
고 있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는 이 두 사업을 관장하고 있던 동기생 석
정선제2국장을 찾아갔다.
"석국장. 우리나라는 지금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들어갈 외화
를 구하기 위해 기업인들이 외국에 나가서 구걸하다시피하고 있어. 우
리가 갖고 있는 적은 외화나마 집중적으로 경제개발에 써야 할 거야.
그런데 새나라 자동차 건설이다, 워커힐 건설이다 해서 외화를 낭비하
고 있는 것은 무슨 일인가 말이야.".
석정선은 당당하게 설명했다.
"전 국장, 모르는 소리 하지마. 새나라 자동차는 일제자동차를 수입
해서파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 조립시설만을 일본에서 가지고 오게 되어
있어요. 자동차 한 대를 조립하는 데 약5천 개의 부속품이 필요한데 몇
가지만 일본에서 수입하고 대부분은 국내에서 생산하기로 했어. 그래서
수십 개의 부품공장에 견본을 주고 제작이 가능한가를 점검했더니 결과
가 좋단 말이야. 조립공장을 중심으로 한 수십 개의 부품공장이 일어나
고 공업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되며 실업자도 많이 구제될 수 있단
말이야. 워커힐 공사는 임야 52만 평방미터에다가 미군용 위락시설을 만
드는 것인데 이게 완공되면 연간 200만 달러의 외화를 벌 수 있어. 미군
5만명이 일본에 가서 달러를 몽땅 쓰고 돌아오는데 이 돈을 잡아야지.".
전재구는 석정선의 박식한 이야기에 설득당했다. 오히려 자신의 단견
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1년 뒤 전재구는 '역시 그때 내 생각이 옳았구나'
하는 쪽으로 판단이 바뀐다.
김종필 정보부장은 1961년9월에 유엔군 전용위락시설인 '희망촌(Hope
Town)'을 건설하는 계획을 짜 박정희 의장의 결재를 받았다. 이 계획이
워커힐 건설로 확대된 계기는 1961년10월10일 대만의 건국기념일인쌍십
절행사로 거슬러 오른다. 김종필정보부장은 석정선 국장과함께 장개석총
통의 초청을 받아 대만을 방문했다. 장개석은 자신을 예방한 김종필 부
장일행에게 경고 겸 충고를 했다.
"젊은 여러분들을 보니 혁명동지 같은 느낌이 듭니다. 혁명을 해본 노
인으로서 충고를 한 마디 할까 합니다. 혁명을 한 사람은 대개 불행해집
니다. 혁명을 한 사람은 하루에 한번씩 자신을 혁명하지 않으면 안되니
이게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쌍십절 기념 파티에서 김종필 일행은 초청되어 온 멜로이 미8군 사령
관을 만났는데 그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한일회담에서 한국의 청구권 요구가 너무 강경한데 어떻게 좀 잘 풀
수 없을까요. 제가 한국 정부를 도와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주한미
군장병들이 휴가 때는 일본에 가서 돈을 쓰고 오는데 한국에 위락시설이
생기면 휴가를 여기서 보내도록 유도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조갑제 출판국부국장 *)
(*이동욱 월간조선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