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필의 위기탈출 ##.
박정희 의장이 육군방첩부대장 김재춘 준장을 중앙정보부장
으로 구두 발령했다가 하룻만에 번의했다는 김씨의 증언은 사실
에 가깝다.당시 정보부 6국장이던 전재구(뒤에 유정회 국회의원)
에 따르면 김종필부장 경질설이 전해지자 정보부 국실장들은 워
커힐의 한 밀실에서 회합을 갖고 김부장과 동반사퇴하기로 결의
했다고 한다. 김형욱, 길재호 등 최고회의내 8기생 그룹은 함경
도 인맥 등 반김종필 세력을 무마시키기 위해 하나의 타협안을
만들었다고 한다. 김종필을 정보부장 자리에 유임시키는 대신에,
부정축재조사단의 부정사건을 파헤쳐 이주일 부의장으로 대표되
는 함경도 세력에 타격을 가한 전재구 국장을 경남도지부장으로
내려보낸다는 안이었다.
전재구 국장은 그 전해에 부정축재처리위원장 이주일 최고
회의 부의장의 보좌관인 양모 대령이 부정축재를 조사중 함경도
기업인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건을 수사한 책임자였다. 김종필
부장은 이 사건을 호재로 삼아 최고회의 내 함경도 인맥의 기를
죽였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1962년 7월10일 김재춘은 육군방첩부대장 자리를 육사5기
동기생인 정승화 준장에게 물려주고 재청 최고위원이란 한직으
로 밀려났다. 재경위원장 김동하는 외무-국방위원장으로, 재경
위원장엔 유양수 외무-국방위원장이, 문교사회위원장엔 김용순
최고위원이 임명되었다. 내각수반엔 김현철 경제기획원장이, 경
제기획원장엔 김유택 전재무장관이, 상공장관엔 유창순(뒤에 국
무총리 역임)이 임명되었다.
박 의장은 또 혁명주체의 원대복귀에 찬동하던 김성은 해병
대사령관을 예편시키고 김두찬소장을 중장으로 승진시켜 후임으
로 임명했다. 김신 공군참모총장도 예편되고 장성환 소장이 중
장으로 승진되어 후임이 되었다. 이런 대폭적인 인사는 박정희
의장이 일단 김종필 세력에게 재신임을 준 것으로 이해할 수 있
다. 이는 육사8기 그룹을 중심한 민정참여파의 승리이기도 했다.
1962년7월23일 주한 미국대사 사뮤엘 버거는 이른바 '칸츄리
팀'(Country Team)의 한국정세 분석결과를 러스크 국무장관에게
올렸다. '칸츄리 팀'이란 한국에 주재하는 미국정부 각기관, 즉
대사관-미군-원조기관의 대표들 모임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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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7월23일자 주한미국 대사 사뮤엘 버거의 딘 러스크
장관 앞 보고서는 이런 요지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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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7월27일 사뮤엘 버거 주한 미국대사는 러스크 국무장
관에게 올린 보고서에서 또 다시 김종필 정보부장을 어떻게 견
제할 것인가에 대해서 구체적인 건의를 한다. 이때부터 주한 미
국의 대한 정책, 그 중심부에는 김종필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중요 목표로 설정된다.
. '계속'.
(* 조갑제 출판국부국장 *)
(* 이동욱 월간조선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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