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도빈선생 유지 받들어 공동조사...아들이 비용 전담 ##.
일제 강점기, 발해사 연구를 향한 사학자 겸 언론인의 꿈이 근 90년이
지나 그의 아들과 후배 학자들의 노력으로 발해 유적 발굴보고서로 열매
를 맺게 됐다.
연해주 발해문화유적조사단(단장 정영호·문화재위원)과 러시아 극동
대학 고고학연구소는 92년부터 98년까지 공동으로 조사한 뒤 공개하지 않
았던 발해 유적 조사 결과를 3월 초 간행할 예정이다.
조사 비용은 고합그룹 장치혁 회장이 전액 부담했다. 최근 그룹이 워
크아웃(기업구조개선)에 들어가는 등 어려운 처지임에도 장 회장이 앞으
로도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것은 부친인 산운 장도빈(1888
∼1963) 선생의 유지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한말 대한매일신보 논설주필과 단국대 초대학장 등을 지낸 산운은
1910년대초, 연해주로 독립운동을 떠났다. 그는 이곳에서 발해 유적을 조
사한 뒤 우수리스크를 발해 동경으로 추정했다. 저술 활동을 통해 발해와
통일신라를 '남북국'체제로 인식할 것도 일찍이 주장했다.
장 회장은 89년 선친의 자취를 따라 우스리스크를 방문했다가 발해 유
적을 현장 조사할 필요성을 절감, 발굴단 구성을 지원한 것이다.
발해 발굴은 지난 92∼93년, 대륙연구소가 우수리스크 등 세 곳을 발
굴한 이후 사상 두번째. 이번 조사에는 연해주 발해 주요 유적지 50여곳
도 지표조사돼 베일에 싸인 발해사 연구의 심도를 더욱 깊게 할 것으로
전망된다.
발굴 지역은 연해주 아브라모브카와 마리야노프카 등이었다.
발굴단은 발해 생활문화를 이해하는 데 비중을 두었다. 발해의 피지배
층을 이룬 말갈족 주거지를 발굴하는 등 집터 발굴에 중점을 둔 것도 이
런 이유였다.
서기 9세기 발해가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마리야노브카 토성 내부에서
는 동물 뼈로 만든, 산삼을 파는 도구가 발굴돼 면면히 이어온 우리 식문
화를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또 끈에 매달 수 있게 구멍을 뚫은 곰 발톱 등이 발굴됐
다. 이 지역 샤먼들이 최근까지도 '곰 축제' 때 곰뼈를 사용했다는 점에
서, 발해 샤먼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자료였다.
(* 신형준기자·hjshin@chosun 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