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까지만해도 우리는 남이 선택한 길을 가야 했습니다. 그
러나 3월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과 함께 우리는 운명의 주
인이 됩니다.".
지난 4일 헝가리시민협의회 모임에서 연설하는 35세 총리는 당당
했다. 자신에 찬 어조와 이글거리는 눈빛은 청중을 압도했다.
안보를 남의 손에 맡겼던 신세를 청산하고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게 됐다고 선언하는 젊은 지도자에게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유럽
연합(EU) 가입을 앞당기겠다는 다짐도 했다. 통합 유럽의 일원이 돼
500년전 헝가리 왕국의 영광을 재현하는 것, 그것은 재임 9개월째에
접어든 청년 총리가 10년전부터 꾸던 꿈이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 작년 5월 총선에서 승리, 사회당 정
권을 이어받은 그는 선거로 뽑힌 총리로는 최연소다. 공산정권 타도
의 선봉에 서 있었기 때문에 '반공운동권 출신'이라는 말도 붙는다.
오르반은 원래 프로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던 소년이었다. 고교졸
업후 진로를 고민할 때 아버지는 "우리 집안에서 누군가는 대학에
가야 할때"라며 진학을 권유했다. 오르반은 부다페스트대학에서 법
학을 전공했다.
졸업 무렵, 동유럽을 휩쓴 민주화 돌풍은 그를 거리로, 연단으로
몰아냈다. 오르반은 88년 부다페스트의 반체제 대학생을 모아 청년
민주동맹(FIDESZ)을 만들었다. 89년 6월,33년전 반소 민주화 혁명
당시 총리였던 임레 나지의 이장식이 열린 부다페스트 영웅광장에서
그는 대중의 스타로 도약했다.
변화를 열망하는 30만 군중앞에서 장발 청년 오르반은 '역사적
연설'을 한다. "일당독재를 끝내고 자유 선거를 실시하라. 다당제를
보장하라. 40년 지배자 소련군은 철수하라…" 소련군 철수는 누구
도 감히 못하던 말이었다.
90년 4월 헝가리에서 최초의 자유총선이 실시되자 오르반은 옥스
포드대 유학을 중단하고 귀국,의원에 당선됐다. 94년 총선에서 그가
이끄는 FIDESZ는 20석을 얻는데 그쳐, 현실정치의 벽을 절감했다.다
시 4년을 준비한 끝에 작년 총선에서 그의 당은 148석을 얻어 집권
에 성공했다.
30대 총리에 대한 국내외 반응은 처음에는 비관적이었다.'미숙한
지도자'와 '급진적 공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넘쳤다. 하지만 오르
반은 의외로 빨리 헝가리를 안정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보수파인 소
지주당과 연합, 국민의 불안을 누그러뜨렸고, 러시아 경제위기에도
국내 시장을 훌륭히 방어했다. 인플레이션(97년 18.5%)도 약화시켰
으며, 치안강화와 인권신장, 외자유치 촉진 등 조치로 대외신뢰도를
높였다.
헝가리 국민은 어느새 청년 총리의 열정과 카리스마에 사로잡힌
것 같다.
지난 4일의 연설이 생생한 현장이었다. 헝가리를 중부유럽 중심
국가로 만들겠다는 오르반의 열변은 단순히 공산체제 몰락전의 위상
을 되찾자는 것이 아니라 "수백년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다짐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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