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의 아그네스'는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수녀
가 아이를 낳은 후, 탯줄로 목졸라 휴지통에 버렸다는 충격적인 사실
만으로 2시간 넘게 객석에서 버티기는 어렵다. 신앙을 잃어버렸으면
서도 마음 한구석으론 기적과 구원을 갈망하는 현대인들을 파헤친 복
잡한 심리극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알코올 중독과 아동 학대같은 사
회문제가 덧입혀졌다.
서울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초연 멤버들이 다시 올린 '신의 아그네
스'(2월 12∼19일)는 힘겨운 관극을 기꺼이 감수할 만한 보람을 느끼
게 했다. 16년 전 장안의 화제로 떠올랐던 '아그네스' 초연은 단편적
인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윤석화의 신비스런 노래와 피로 물든 수녀
복, 윤소정이 피운 담배 개피수…. 선정적인 소재로 성공한 작품이라
고 생각했는데 다시 만난 '아그네스'는 훨씬 풍성했다. 세 여자의 미
묘한 심리변화를 깔끔하게 소화해낸 호연이 무엇보다 보는 재미를 더
한다.
윤석화(아그네스) 윤소정(정신과 의사 리빙스턴) 이정희(미리암
수녀원장) 세 주연은 연륜에 걸맞는 농익은 연기로 보답했다. 40대의
윤석화는 가녀린 목소리와 앳된 얼굴로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던 스물
한살 아그네스를 매끄럽게 연기했다. 아그네스를 둘러싸고 윤소정과
이정희가 벌이는 불꽃 튀는 연기 대결도 볼만 했다. 뒤엉킨 실타래를
풀듯 한 발자국씩 살인사건 본질에 접근하는 미스터리 기법은 추리소
설 읽듯 긴장감을 더했다.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무대와 고급스런 팸플릿은 잘 차린 밥상을
대하는 것처럼 흐뭇한 포만감을 선사했다. 삐걱거리는 무대와 의자
소음에 시달렸던 운니동 실험극장까지 떠올리며 격세지감을 느끼게했
다.
'아그네스'는 관객층 빈약한 연극계에 세대를 아우르는 작품이라
더 반갑다. 40대 후반과 20대 초반 모녀가 나란히 객석에 앉았고, 10
대 청소년부터 50대 중년층까지 골고루 눈에 띄었다. 존 필미어 작·
윤석화 연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