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한국 문학의 '젊은 상징'으로 살아있는 시인 기형도 10주기를
맞아 '기형도 전집'(문학과 지성사)이 내주초 나온다. 시인의 사후 처음
이자 마지막 시집이었던 '입 속의 검은 잎' 수록시를 비롯, 미발표 시와
단편소설 산문 등을 실었다. 시인의 오랜 문우였던 소설가 성석제 원재
길평론가 박혜경씨가 낡은 습작 노트를 뒤져 '수채화' 등 미발표시 37편
을 골랐고, '겨울의 끝' 등 단편소설 8편, 산문 '짧은 여행의 기록'도
모았다.
기형도는 지난 89년 3월7일 새벽 서울 종로의 한 심야극장에서 뇌졸
중으로 세상을 떴다. 만 29세 생일을 엿새 앞두고 있었다. 그는 80년대
끝에 서른의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죽어서 90년대의 시인으로 살고 있
다. 89년 5월 출간된 시집 '잎 속의 검은 잎'은 지금까지 18만부 찍으면
서 시인 지망생들 사이에 문학적 신화로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안개,
밤눈, 진눈깨비,가는 비, 저녁 거리의 가등 등등 기형도 시의 공간을 채
우고 있는 이미지들이 젊은 날의 그리움과 우울한 영혼의 초상을 그려낸
탓이다. 인터넷 '야후 코리아'에 들어가서 '기형도'를 치면 독자가 만든
홈페이지도 찾을 수 있다.
기형도는 90년대 문학 논의에서 가장 뜨거운 상징이기도 했다. 시집
'입 속의…' 해설을 쓴 평론가 김현마저 90년 타계한 이후 젊은 평론가
들의 기형도론이 쏟아지면서 그의 문학적 생명력을 현재진행형으로 만들
었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창밖을 떠돌던 겨
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빈집' 전문).
기형도가 타계 직전 발표한 이 애절한 생의 연가는 절친했던 소설가
신경숙의 단편 '빈 집'에 영감을 제공했다. 시인 김지하가 "기형도 이후
죽음의 미학이 젊은 시인들 사이에 퍼져있다"고 지적할 정도로 기형도는
90년대 시인들의 신표로 통용되고 있다.
이번 전집에 실린 미발표 시와 소설들은 79년∼80년대초 대학시절의
기록이다. 겨울과 도시, 시인의 이미지들이 지배적인 습작시들을 죽은
시인은 공개하길 꺼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들은 '입 속의…' 시적 세
계의 근원을 명료하게 밝혀준다. 전집 편집위원들은 "절대로 포함시키지
않을 글이 눈에 뜨일 땐, 가차없이 우리를 꾸짖어주기 바란다"라며 "그
럴 경우에 우리는 독자 뿐만 아니라 기형도에게도 동시에 용서를 구해야
옳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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