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지난 한달간 정부-여당과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밀고 당기는
'대치 국면'이 계속됐다. 발단은 국채 인수 논쟁.

지난해 60조엔 규모의 대형 경기부양책을 공약한 일본 정부는 자금
조달을 위해 올들어 대량 국채 발행에 나섰다. 이 때문에 채권시장에선
국채 가격이 떨어지고 금리(유통수익률)가 올라갔다. 장기금리 인상은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상승시켜 기업 수익을 악화시키는 '예상 밖의'
결과를 불러왔다. 더욱이 금리가 오르면서 일본을 빠져나갔던 자금이 엔
으로 몰려 엔이 강세로 돌아섰다. 이는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
뜨리는 '더블 펀치'로 작용했다.

당연히 업계에선"경기부양책이 기업 숨통을 끊는다"고 아우성쳤다.자
민당도 대책 수립을 정부에 촉구했다. 문제는 이 대목이다. 궁지에 몰린
정부가 '만만한' 일본은행에 국채 인수를 종용한 것이다. 하지만 일은은
"국채 인수가 악성 인플레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면서 이를 묵살했다.

정부 여당은 재차 일은이 가진 단기 시장조작 기능을 활용해 국채를
매입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미국도 금융완화 정책을 취하라고 가세했
다. 그러나일은은 냉정히 거절했다. "시장조작이란 제한된 자금으로 일
시적 개입에 그쳐야 하는데, '계속적인' 국채 매입은 국채 인수와 다를
게 뭐가 있느냐"는 반론이었다.

결국 국채 인수 논쟁은 대장성이 '비상금'을 털어 2∼3월 두달간 4천
억엔의 국채를 인수하는 것으로 낙착됐다. 일은은 대신 통화 공급량을
늘려 장단기 금리를 끌어내림으로써 국채가 시장에서 원활히 소화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맡기로 했다.

일본은 지난해 4월 중앙은행 독립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
했다. 그렇다고 일은의 이번 행동을 '당연한 일'로 봐 넘길 것은 아니
다. 전후 최악의 불황이라는 일본 경제는 지난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
을했다. 올해까지 마이너스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정권의 명운이 갈
릴지 모른다. 그런 와중에 정부와 정치권의 압력을 뿌리치기가 쉬웠을
까. '시류냐, 원칙이냐'의 갈림길에선 언제나 용기가 필요하다는 게 이
번 '항명 파동'이 주는 교훈이다.

(* 이준·동경특파원·junlee@chosun 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