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파주의와 국가주의 ##.

1961년12월4일 딘 러스크 미 국무장관은 사뮤엘 버거 주한 미국대사
에게 보낸 전문에서 박정희의 방미에 대해 높은 평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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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 대사는 12월15일 러스크 장관에게 보낸 '한국의 상황에 대한

평가 보고서'에서 '한국은 이제 정치적으로 안정되었으며 적어도 앞으

로 여섯 달동안은 이런 상태가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버거 대사

는 '지난 5월 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아무도 이 장교단이 누구이고

무엇을 할지 몰랐는데 이제 그들은 진정한 개혁을 추진하고 정직하고

능률적인 정부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능력있고, 열성적이며 헌신적인

집단임을 증명해보였다'고 극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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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 대사는 이런 정치적 안정은 박정희의 지도력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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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 대사는 '혁명정부가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서둘다 보니 1962년
도 예산을 적자팽창 예산으로 편성한 것이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대
사는 '한국측에서는 적자를 미국이 메워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했
다. 1962년4월4일 미국 CIA가 주관하여 각 정보기관이 합동으로 작성한
'남한의 장기 전망'이란 특별정보판단서가 있다. 1970년까지의 정치정
세 예측이다. CIA 이외에 국무부 국방부 정보부서 및 육·해·공군의
정보부대, 그리고 합참이 참여했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정치정세는
군부, 민간 부문이 격렬한 갈등과 분파주의에 휩쓸릴 것이다. 군부는
국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할 것이다. 형식상으로는 민간정부일지라도
군부의 영향력은 압도적일 것이다. 쿠데타에 의한 정권 교체의 가능성
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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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는 실제보다도 남한의 미래를 어둡게 보았다. 박정희는 이
기간(1970년까지)에 한국사회의 분파주의를 누르고 고도 경제성장을 달
성했기 때문이다. 이 무렵 미국 정보기관의 한국정세 분석에서 가장 중
요한 상수로 삼고 있는 것은 역사적 전통에 뿌리를 박고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혈연·지연·학연에 따른 분파주의였다. 주목할 만한것은 미
국측은 박정희가 이런 분파주의를 억누르는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호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무렵 미국측이 박정희 세력에 대해서 호감을 갖게 된 것도 자유
당, 민주당 정부 때의 분파주의가 가져온 비효율과 부패에 비교되는 군
사정부의 국익우선 정책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군인들이 아마추어
정신으로 너무 서둘기는 하지만 사심없이 문제를 직시하니까 여러 가지
신선한 발상과 해결책이 나오고, 일단 방향만 결정되면 무섭게 밀어붙
이는 군대식이 한국사회를 바꾸고 있었다. 대한주택영단에 의한 마포
아파트 건립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주인공은 2군 사령부 직속 공병대대장으로서 혁명주체 중 한 사람이
된 육사8기 장동운중령. 그는 혁명 직후 대한주택영단 이사장으로 임명
되어 부임하자말자 직원들을 모아놓고 '소문이 나쁜 사람'을 찍어내는
기명투표를 하게 했다. 다섯 번이나 되풀이한 투표를 집계하여 물러날
사람을 정한 데 이어 무기명투표로써 '존경할 수 있는 사람'과 '존경할
수 없는 사람'을 고르게 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내보내는데
하루평균 5 - 7명씩 의원면직되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구조개혁을
한 다음 장동운은 1961년10월16일 마포아파트 착공식을 가졌다. 10층짜
리 11개 동에 1천1백58호가 들어가는 대규모 아파트를 50억환의 예산을
들여 건설한다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계획이었다.

장동운이 이런 발상을 한 계기는 단순했다. 1953년에 미국에서 공병
교육을 받고 있을 때 잡지에서 본 유럽의 아파트 단지 사진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때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마셜 플랜에 의한 미국 원조로 고층
아파트를 많이 짓고 있었습니다. 땅이 좁은 우리나라에도 옆으로만 퍼
지는 연립주택만 지을 게 아니라 높이 올라가는 아파트를 세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죠.".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 (*이동욱 월간조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