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길 운전자에 껌 한개 주며 "조심 운전 하세요" 9년째 ##.

♧ 지난 1월24일 가족들과 함께 동해안 겨울바다 나들이를 다녀
오던 회사원 이학수(43)씨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화진포에서 인제를 지나 거의 홍천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두
시간 가까운 운전에다 자정이 가까워 졸음을 참으며 운전대를 잡고
있는데 앞에 검문소가 보였다. "또 검문소야?" 이미 몇곳의 검문
소를 지나온 터라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이씨의 차례가 되어 차창을 내리자 헌병이 다가왔다.

"가족 나들이 다녀오시는군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도와드릴 일
은 없읍니까?" 환한 얼굴의 헌병은 거수경례를 하며 상냥하게 말을
건네왔다. "조금 더 가시면 홍천이 나옵니다. 그곳부터는 길이 넓
고 밝으니까 운전하기에 편할 겁니다. 홍천까지 도로결빙 구간도
없으니까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이것 드시고 졸음 운전 하지 마세
요." 헌병은 깍듯한 경례와 함께 껌을 한개 내밀었다.

얼떨결에 껌을 받아든 이씨는 차를 다시 출발시키며 웬지 기분
이 좋아졌다. 옆자리에서 선잠에 들었다 깨어나 그 모습을 본 아내
와 아이들도 "헌병아저씨가 껌을 다 주네요"라며 신기한 듯한 표정
을 지었다.

육군 3군단 헌병대(대장 이상만 중령) 철정검문소. 홍천에서 인
제 방향으로 44번 국도를 타고 10분 정도 달리면 만나는 이 검문소
헌병들이 여행객들에게 껌을 나눠주는 것은 벌써 10년째로 접어든
다.

'껌 한개의 사랑'은 우연치 않게 시작됐다. 지난 82년부터 초소
장으로 근무했던 고득송 원사가 밤길을 운행하는 군 차량들을 검문
하면서 운전병들에게 "껌이라도 씹으며 졸음을 쫓아라"고 나눠주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엄하게만 생각됐던 헌병 하사관이 주는
껌은 곧 운전병들 사이에 '최고의 인기품'이 됐다.

운전병들의 반응이 좋자 이들은 밤길을 오가는 민간인 차량들에
게도 껌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행락철이면 오가는 2만여대 가까운
차량의 운전자들에게 모두 껌을 나눠주기 힘들자 부대 간부들과 초
소장이 용돈을 줄였고 검문소 잡품을 구입하기 위한 예산도 절반으
로 뚝 잘라내 비용을 마련했다.

이들이 껌을 사려고 모으는 돈은 매달 6만원에서 12만원정도.관
광객들이 몰리는 여름과 겨울엔 그만큼 지출도 많아진다. 그 탓에
늘 초소 잡비가 달랑댔지만 껌을 받아들고 흐뭇해하는 운전자들의
미소를 생각하면 그까짓 불편은 아무래도 좋았다.

민간인들이 아는 검문 헌병들은 깊게 눌러쓴 철모에 무뚝뚝한
말투로 '잠시 검문 있…'에서 끝내버리는, TV 코미디에서 개그맨들
이 흉내를 낼 정도로 고압적인 모습으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그런
헌병들이 다가와서 "도와드릴 일은 없읍니까? 조심 운전하십시오"
라며 껌을 건네주다니….

비록 껌 한 개이지만 뜻밖의 친절에 집으로 돌아가 감사의 편지
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한 여행객은 '껌 한 개로 그동안 멀게만
느껴졌던 군과 군인에 대한 감정이 말끔히 사라지게 되는 것을 느
꼈다. 이제 군이 친근한 사이처럼 생각된다"며 고마움의 글을 보내
오기도 했다.

'껌 나눠주기'를 시작했던 고득송 원사는 지난 97년 명예전역을
했지만 이 작은 나눔은 계속되고 있다. 몇년전부터는 군단 헌병대
에서 지역 관광 안내도를 만들어 검문소를 지나는 관광객과 면회객
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다.

가로 13㎝, 세로 18㎝ 크기의 지도에 관내 도로와 관광명소, 거
리와 버스·선박 등의 운행 시간 등을 표시한 이 지도는 초행길에
나선 관광객들이나 면회객들이 근무 헌병들에게 길을 물을 경우 상
세한 길안내와 함께 나눠주는 것.

또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체인들을 주워 겨울철에 채비없이 나
섰다가 낭패를 겪는 차량에게 빌려주기도 한다. 부초소장 진종필
하사는 "관할 부대에 신병으로 근무하는 아들을 면회온 아버님에게
체인을 빌려드렸더니 면회를 마치고 돌아오시는 길에 체인을 돌려
주시며 고마와했다"고 말했다.

철정검문소원들은 휴일이면 주변 관광지에서 빈병과 폐품 수거
에 나서기도 한다. 놀이터 청소의 의미도 있지만 정작 이들이 생각
하는 것은 인근 홍천군 두촌면 철정1리의 노인들을 위한 것. 폐품
을 팔아모은 돈으로 봄, 가을이면 초소 앞 강가에서 마을 노인들을
모시고 술시중도 하고 노래자랑도 벌인다.

우정호 병장은 "노인들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 꼭 집 잔치를
치르는 것 같아 기쁘지만 상차림이 초라해 송구스러울 때도 있다"
며 되레 미안해하기도 했다.

그간 철정검문소에서 이름모를 운전자들에게 미소와 함께 건넨
껌은 10만개를 넘는다. 이곳 헌병들의 껌사랑은 혹한에 몰아치는
칼바람도 훈훈하게 녹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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