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 프랑스 문학 샛별로 떠오른 여성 작가 마리 다리외세크
(30)가 드디어 한국에도 상륙했다. 그가 96년 발표한 첫 소설 '암퇘지'
가 불문학자 정장진씨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나왔다. 당시 서른도 되
지 않은 그는 데뷔작으로 일약 문단 신데렐라가 됐고, 이 소설은 34개
국어로 번역됐다.
2백쪽이 채 되지 않는 얇은 장편 '암퇘지' 줄거리는 단순하다. 오랫
동안 실직 상태에 있던 젊은 여성이 향수 가게 점원이 된다. 가게 지배
인의 성 노리개가 되지만, 실업자가 되는 것보다는 낫다. 주인공은 점
차 가게 고객들을 상대하는 고급 매춘부로 전락하는데, 육체가 돼지로
변해가는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이 소설은 끝내 암퇘지가 되고 만 주
인공'나'의 회상기로 전개된다. 불어나는 육체, 갯수가 늘어나는 젖가
슴,피부에 번지는 회색빛 반점 등등이 끔찍한 변신 과정을 서서히 형성
한다. 동시에 소설 속 현실 역시 기괴한 사건의 연속으로 구성되면서
독자들을 낯선 환상 속으로 몰아넣는다. 보름달이 뜨면 늑대로 변하는
사내가 나오고, 혼음난교가 벌어지거나, 쥐와 지렁이를 잡아먹는 식사
장면등이 이어진다. 소설 첫머리에서 화자가 '혼란'과 '불안'이란 단어
를 쓴 그대로 이 소설은 어지러운 독백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묘하게도
황당무계한 환타지 소설로 잃히지 않는다.
이처럼 낯선 현실 묘사는 세번째 밀레니엄을 앞둔 불안, 현대판 페스
트로불리는 AIDS와 죽음, 사이버 가상 현실 등 세기말 서구 젊은 세대
을 지배하는 화두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초반 주인공의 실직
생활기억에는 20대 중-후반 실업률 높은 프랑스 사회 현실이 깔려있다.
이 소설의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 촛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외부 현
실보다 인간 그 자체의 기괴함이다. 돼지가 되는 주인공의 눈으로 본
육체묘사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육체를 지배하는 죽음
과 성에 대한 악마주의적 문제 제기인 셈이다. 번역자가 지적했듯, 그
러면서도 우스꽝스러움과 비장함이 뒤섞여 있어서 씁쓸한 뒷 맛을 남기
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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