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트메어' 감독의 '공포 영화에 관한 공포 영화' ##.
♧70∼80년대 할리우드를 풍미했던 유행으로 슬래셔(slasher)무
비라는 것이 있다. 스플래터(splatter)라고도 불렀는데, 이름이야
'난도질'이나 '피투성이'나 그게 그거고, 문제는 이 싸구려 영화
들이 가진 성 정치학적 힘이었다.
그 흉악한 괴물들은 억압당한 리비도인가, 응징되어 마땅한 타
자인가. 난자당하는 10대 소년 소녀들은 가부장적 질서의 희생자
인가, 아니면 성적 방종의 대가를 치르는 중인가. 최후의 생존자
인 '순결한 처녀'는 과연 순결한가.
이 논쟁의 한 가운데 웨스 크레이븐이 서 있다. 영문학 교수가
뭐가 아쉬워 이 피바다에 뛰어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초기
작 '분노의 13일'과 '공포의 휴가길'은 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로 남아 있고, 출세작 '나이트메어'는 엄청난 흥행 성공을
기록한 바있다. 후배들이 만든 일련의 속편이 영 마음에 들지 않
았던 그는 '뉴 나이트메어'를 찍어 스스로 이 장르 사상 가장 위
대했던 시리즈에 종지부를 찍어버렸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
으로 간주됐는데 이는 물론, 이제 장르의 수명이 다하지 않았느냐
는 의구심때문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뉴 나이트메어'는 '나
이트메어'시리즈의 최종편을 만드는 영화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루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섣부른 추측이었다. 악몽은 계속된다.
슬래셔 마니아 청소년들이 영화를 모방해서 살인을 저지른다는
'스크림(1월 16일 개봉)'의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그 자체로 더
없이 뛰어난 공포 영화인 동시에 공포 영화에 관한 영화, 이것은
말하자면 메타 장르 영화이다.
그런 뜻에서 '뉴 나이트메어'와 '스크림'은 하나의 쌍을 이룬
다. 전자가 영화 창작자의 악몽이었다면 후자는 관객의 악몽을 다
룬다.
공포 영화광인 소녀는 비디오를 감상하려고 팝콘을 준비하다가
괴 전화를 받는다. 공포 영화에 관한 퀴즈를 맞추지 못하면 애인
은 물론이고 자신마저 살해당해야 한다. 영화를 통해 살인장면 구
경하기를 즐기던 소녀는 이제 영화 속 희생자와 가장 확실한 동일
시를 이루게 된다. '겁에 질린 풍만한 가슴의 금발 소녀'란 바로
자기였던 것이며 영화의 악마가 스크린 밖으로 뛰쳐나온 셈이다.
마치 '뉴나이트메어'에서, 프레디 크루거가 영화 밖에 실존하
고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자체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영화가 대개 그렇듯 여기서도 환상과 현실 사이의 충돌이 문제시
된다. 살인자는 영화 속 세계와 자신의 현실을 혼동하고, 희생자
역시 이게임은 자신의 비참한 죽음으로 마무리되리라는 점을 수많
은 관람체험을 통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당연히 주인공으로 생각한 스타 드루 배리모어가 영화
시작 30만에 죽어버린다는 충격적인 설정은 당연히 '싸이코'에서
따왔겠지만, 놀라운건 감독 뿐만 아니라 극중 살인자도 바로 그
점을 노렸다는 사실이다. 순전히 좋아하는 영화의 플롯을 따르기
위해 별원한도 없는 여자를 먼저 죽이는 심리는 가공할만 하지 않
은가. 장난으로 살인하는 이 녀석들에 비하면 예전의 괴물들은 얼
마나 위엄이 있었는가.
한껏 부풀어오른 끝에 터져버리는 드루 배리모어의 팝콘 단지
처럼 슬래셔장르는 비등점을 넘어 내파하고 만다. 초기의 5만달러
짜리 쓰레기 영화들에서 웨스 크레이븐이 보여준 거의 무정부주의
적일 만큼 격렬한 비판 정신은 사라지고, 자기 패러디의 왁자지껄
한 파티분위기와 매너리즘의 기교주의가 기승을 부린다. 이것은
자기 모순에 빠진 작가가 검열 당국에 보내는 반성문인지도 모른
다. 괴물을 처치하는 여주인공만이 공포 영화광이 아니라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크레이븐이 확립한 공포 영화의 규칙을 실생활에 적용시키려
날뛰는 살인자들에 대해, 정작 크레이븐은 그런 규칙 따위는 영화
에나 나오는 거라고 타이르는 형국이다. 물론 타이르는 방식이 교
수 출신답게 점잖키는커녕, 우산대로 가슴을 찌르고 이마에 총알
을 박아넣는 식이라 문제라면 문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