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말 웃기는 '바로 우리 얘기'…IMF시대 회사인간 자화상 ##.
♧ 만화책 한 권 추천에 앞선 간단한 테스트. ①회사 앞 술집에
서 두런두런 상사를 '씹어본'적이 있는가. ②지각 출근하면서 '뭐
라고 변명하나' 고민한 적이 있는가. ③근무시간에 사우나나 당구
장에 가본적이 있는가. 하나라도 '그렇다'고 대답했다면, 만화책
'천하무적 홍대리'를 읽고 낄낄거릴 게 뻔하다.
'홍대리'의 매력은 그 만화를 실제 '홍대리'가 그렸다는 데 있
다. 홍윤표(31)씨가 이 만화를 처음 그렸을 때, 그는 코오롱상사
개발사업본부 대리 2년차였다. 지금은 외국계 핵연료 공급회사
'코제마 코리아' 과장으로 일하면서 만화를 그린다.
그의 만화 '천하무적 홍대리'는 모두 회사와 관련된 이야기
다. 근무 땡땡이, 부장 흉보기, 지각 출근, 점심메뉴 고민, 결재
스트레스가 단골 소재다.
홍씨는 회사 동료들과 키득거린 이야기를 보태고 에둘러서 만
화로 그려냈다. 회사원이 그린 회사원 이야기는 그래서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만화책을 단숨에 다 읽고 그를 만났을 때, 하마터면 "홍대리시
죠?"라고 물을 뻔 했다. 그만큼 그는 만화 캐릭터 '홍대리'와 닮
았다. 갸름한 얼굴에 적은 머리숱, 착한 인상이 모두 그랬다. 더
구나 홍씨는 "실제 나를 모델로 그렸다"고 순순히 실토했다. 얼핏
훔쳐본 휴대폰 창에도 '무적 홍대리'라고 쓰여 있었다.
홍대리뿐 아니라, 단골로 등장하는 '부장'과 '최 주임'은 모두
실제 인물들을 섞어서 만든 캐릭터다. 생김새도 실제 인물들에서
조금씩 따왔다. 그가 모신 부장이 3명, 자기 밑에 주임은 4명이나
됐다.
"제가 만화를 배우고 그릴 때 직급이 대리이기도 했지만, '대
리'란 직급이 이런 만화 그리는 데 딱 들어맞는 것 같았습니다.회
사 돌아가는 일도 어느 정도 꿰뚫고 있고, 자기만의 '땡땡이 노하
우'도 갖췄지요. 윗사람에게 가끔 곧은 소리할 줄도 알구요…. 그
렇지만 실수나 잘못으로 자주 깨지기도 하는 자리지요.".
그의 '대리론'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홍대리 팀의 오후
회의 시간. 그달 영업이익 달성률과 다음달 예상치, 환율과 금리
전망수치를 대입한 향후 영업전략 같은 '따분한' 이야기가 이어진
다. 갑자기 회의실 문이 열리면서 여직원이 홍대리를 찾는다. "홍
대리님, 거래처에서 전화왔는데요." 자기 자리로 돌아간 홍대리가
전화를 받는다. 전화 건 사람은 홍대리 입사 동기다.
"나야, 임마.시간 잘 맞췄지?"
"그래, 지겨워 미칠 뻔 했다. 너는 회의언제냐? 바로 전화해
줄게!".
홍씨는 미술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다. 흔히 만화가들이 그
런것과는 달리, 학창시절 생활기록부 장래 희망란에 '만화가'라고
쓴 적도 없다. 그냥 공책에 끄적거려 낙서한 수준이었단다. 대학
(서강대 화공과) 시절 미술반 동아리 활동과, 학보에 4컷 만화를
그린 게 이력의 전부다.
샐러리맨 생활 4년째인 96년, 그는 한 문화센터 만화과정에 등
록했다. 만화를 제대로 배워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언젠가 만화를
꼭 그려보겠다고 생각은 해왔지요. 그런데 아내(권순아·31)가 어
느날 '문화센터에 만화과정도 있더라'며 시작해보라고 하더군요."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결혼한 부인은 그가 갖고 있는 '만화의 꿈'
을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주 2회씩 1년간 만화를 배웠다.
만화 '홍대리'는 그 만화 강좌가 끝나던 96년말 처음 태어났다.
과정 수료를 위해 그려낸 한 페이지짜리가 그 첫 작품이다. 그리
고는 97년초 사내전산망에 '카운트다운'이란 만화를 띄웠다. 모든
부서원들이 '10, 9, 8…' 하면서 시계를 쳐다보다가, '땡' 소리와
함께 오후 6시 30분이 되자 "퇴근이다!" 하면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환호하는 만화다.
"동료들이 LAN에 올려보자고 하더군요. 올렸더니 반응이 괜찮
았어요. 그래서 한 주에 1∼2편씩 30편쯤을 계속 띄웠지요.".
자연 회사 안에서 '홍대리'가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사내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홍대리'만 보면 '홍대리' 이야기를 꺼냈다. 만
화 아이디어를 10개씩 모아서 준 동료도 있었다. 처음 코오롱상사
직원들만 보던 만화는 나중엔 그룹 전체 LAN으로 띄워졌다.
"처음엔 행여 구설수에 오를까봐 '약하게' 그렸지요. 주로 상
사 골탕먹이고 근무시간에 딴짓하는 내용이었으니까요. 은근히 걱
정도 했습니다.".
만화끝에는 '이 만화는 특정부서 특정인물과 무관합니다'라는
사족도 달았다.
그런데 보는 사람마다 "재미있더라"는 반응이었다. 의외이기도
했고, 안심도 됐다고 한다. 소속부서 이사는 "재미있게 봤다, 그
런데 내 얘긴 그리지 마" 하기도 했다.
그 이야기가 알려져, 1년 전부터 월간지 '작은책'에 연재하고
있고, 두달전부터는 인터넷 만화잡지 '화끈(www.hottoon.com)'에
도 연재중이다. 이번에 나온 단행본은 그 만화들을 묶은 책이다.
그는 "만화처럼 줄곧 땡땡이 친 건 아니다"라며 웃는다. 그리
곤 덧붙인다.
"솔직히 할 일 없을 때 서점에 가거나 라면 먹으러 나가는 일
은 가끔 있는 일이잖아요.".
그러나 만화책 끝에 쓴 그의 글 밑에는 이런 글귀가 붙었다.
'회사에서 일하는 척 하면서 컴퓨터로 쳤습니다.'.
일 때문에 외출했다가 만화방에서 3시간 넘게 있었던 일도 있
었다 한다. 시계를 보고 깜짝 놀라 일어났더니 맞은 편에 같은 회
사 사람이 만화를 보고 있더란다. 지각도 '아주 가끔' 했다.
"어느날 늦잠을 자서 지각을 했는데, 그날 따라 옆 부서까지
다들 나와서 조용히 앉아있더군요. 그 사이를 걸어가는데 '뚜벅뚜
벅' 하는 내 발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던지….".
그래서 만화 속 홍대리는 지각했을 때 몸을 종잇장처럼 납작하
게 만들어 몰래 자리에 앉는다.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뒤 기업들이 어려워지면서, 자연스럽게
감원이나 퇴직 같은 소재가 많이 등장했다. 하루는 부장이 나갔다
오더니 부원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오랫만에 친구가 회사 앞에 찾
아와 나갔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라면 값 2000원만 달라"
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손에 잡히는 대로 1만원을 주고 왔다는 부
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홍씨는 이 이야기를 그대로 그렸다.
97년 여름, 홍씨는 회사를 옮겼다. 만화처럼 땡땡이 잘 치고
말썽꾼이어서가 아니었다. 거래처였던 프랑스 회사에서 옮겨올 것
을 제안했다. 근무조건도 괜찮았지만, 무엇보다 만화 보고 그릴
시간이 많은 게 맘에 들었다고 한다.
만화는 주로 집에서 그리지만, 만화 그리는 친구 4명과 함께
쓰는 홍익대앞 작업실 '꾼'에도 가끔 간다. 한 페이지 그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3∼4시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술 마시고
나서도 새벽까지 그리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한 달에 한 편
그리기도 한다.
'홍대리'는 그냥 코믹 만화가 아니다. 일과 회사에 매몰된 '회
사 인간들'어깨 를 탁탁 치며, "이봐요, 우린 사람이란 말이에요"
하고 일깨운다. 그래서 부장한테 깨지면서 머릿속으로는 딴짓하는
홍대리가 밉지 않고, '명퇴면담' 가지고 농담하며 "이런 때일수록
웃어야해" 하는 부장에게서도 '동지애'를 느낀다.
홍씨는 "내 만화를 보면서 한 걸음 떨어져 나를 볼 수만 있다
면 좋겠어요. 회사원도 사람이니까요"라고 했다. 단 한가지 주의
할 점. 이만화를 근무시간에 보다가 홍대리처럼 욕먹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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