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작 '스크림'(Scream·16일 개봉)은 10여년만에 슬래셔 필름
(slasher film) 열풍을 다시 몰아 왔다. 하지만 80년대 공포영화들
과는 영 딴판이다. '나이트메어' 감독 웨스 크레이븐과 신세대 작
가 케빈 윌리엄슨은 슬래셔 정형을 익살맞게 뒤틀고 조롱하듯 깨부
순다. '스크림'은 우중충하지 않을 뿐더러 경쾌하다. 게다가 지적
이다.

시골마을 10대 여학생이 집에 혼자 있다 전화를 받는다. 전화를
건 살인광은 알아맞추면 죽이지 않겠노라며 퀴즈를 낸다. "'13일의
금요일' 주인공은?" 소녀는 자신있게 "제이슨"이라고 답한다. 하지
만 정답은 '제이슨 어머니'다. 소녀는 무참히 난자당해 죽는다.

이 오프닝 시퀀스가 말하듯 '스크림'은 공포영화 매니아들에겐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다. 대사에는 갖가지 공포영화 룰들이 망
라된다. 이를테면 섹스 술 마약을 하거나, "금방 돌아올게"라며 자
리를 뜨는 등장인물은 죽는다…. 윌리엄슨은 그 법칙들이 어떻게
들어맞고 빗나가는가를 두고서 관객에게 머리싸움을 건다. 크레이
븐은 자기 작품들까지 패러디하며 대사로 스스로를 비웃는다.

'스크림'에도 피는 질펀하다. 사신 마스크를 쓴 살인마가 닥치
는대로 사람들을 죽인다. 잔인하기로 치면 80년대 싸구려들에 뒤지
지 않는다. 하지만 등장인물 모두를 범인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기
교부터가 대단하다. 핸드폰과 TV 카메라, 록음악을 비롯해 상큼한
당대 대중문화 코드들이 '공포영화도 이렇게 재미날 수 있다'며 관
객을 빨아들인다. 살인마에게 "날 죽이지 말아요, 나도 속편에 나
오고 싶단 말이예요"라고 말하는 소녀도 있다.

두 범인이 죽지않을 만큼 서로를 찔러대는 대목에선 기괴한 화
술이 절정에 이른다.

존스홉킨스대 영문학 박사인 공포영화 거장 크레이븐은 속편도
성공시킨 뒤 3편을 만들고 있다. 윌리엄슨은 '스크림' 시리즈로 할
리우드에서 가장 비싼 시나리오 작가가 됐다. 하지만 그가 각본을
쓰고 다른 감독이 연출한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있
다'가 범작이었음을 생각하면 크레이븐의 재능이 새삼 빛난다. 니
브 캠벨,스킷 울리히를 비롯한 출연진은 90년대 청춘스타군을 이르
는 '프랫팩(Fratpack)'의 상징이 됐다.

'스크림'은 가히 '포스트 모던 슬래셔'랄 만하다. 공포영화를
비하하거나 역겨워하는 관객에겐 훌륭한 입문서가 될 것이다.

※키워드/슬래셔 필름...80년대 할리우드에서 전성기를 구가한
잔혹 공포영하. 스플래터 무비라고도 불린다. 난도질(slash)과 피
가 튄다(splatter)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원조격인 '할로윈'(78
년)을 필두로 '13일의 금요일'(80년)과 '나이트메어'(84년)가 슬래
셔 광풍을 이끌었다. 하지만 조악한 속편과 아류작이 범람하면서
소수 공포영화 매니아를 제외하곤 80년대 이후 영화팬 기억속에 폐기처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