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529호실 안기부 문서 사건'을 다루다 논리가 궁해지는
정치인은 국회 속기록이나 신문 스크랩북을 뒤져볼 일이다. 거
기에서 과거여당이 지금여당 논리로, 과거 야당은 지금 야당논
리로 치열한 공방을 전개하는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
다.
95년 9월 20일 국회 내무위. 국민회의 김옥두 의원은 경찰의
'각계 동향보고'를 문제삼아 "경찰이 민생치안은 외면하고 야당
정치인들의 사찰을 자행하고 있다"며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
고 하는 방대한 정치사찰"이라고 비난했다. 장영달 의원은 "정
치사찰은 경찰의 임무와 권한 남용의 금지를 규정한 경찰법 3-4
조 위반"이라며 "관련자를 모두 파면-구속하고 경찰청장도 사퇴
하라"고 주장했다. 경찰을 안기부로만 바꾸면 요즘 한나라당 얘
기 그대로다.
당시 박일용 경찰청장이 "경찰은 동향파악 차원에서 각 분야
정보수집을 하고 있으나, 정치사찰 목적의 동향파악은 하고 있
지 않다"고 주장한 것도 요즘 이종찬 안기부장의 주장과 너무
닮았다. 이영창 의원 등 당시 여당 의원들이 "정보수집은 경찰
의 통상적인 업무"라고 옹호하는 것은 지금 국민회의 모습이다.
요즘 한나라당 대변인 성명은 "안기부가 정당과 정치인에 대
한 사찰을 재개했다. 최근 안기부 행태는 민심을 억누르고 독재
연장에 골몰한 5공말기 정권안보용 안기부와 흡사하다"는 97년
1월23일 국민회의 대변인 성명을 거의 그대로 복사한 것과 다름
없다.
93년 2월26일 김덕 신임안기부장이 "안기부에 부정적 이미지
를 준 요인인 정치사찰 기능을 과감히 이탈, 국가 이익을 위해
해외정보와 대북정보에 역점을 두겠다"고 말한 것도 이종찬 부
장이 자주 하는 말이다.
정권교체가 이루어졌을 때, 외국 언론들은 "한국에 처음으로
집권 경험이 있는 야당이, 야당경험이 있는 집권당이 탄생했다"
는 점을 주목했었다. 그러나 요즘 여야의 행태를 보면, 과거의
경험이 국정이나 정국의 건전한 운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