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회교권 국가' 하면 떠오르는 것이 폐쇄주의, 회교원리주의,
끊이지 않는 분쟁 등이다. 남편이 리비아로 발령을 받아 도착한 것
이 93년 6월의 일이었고, 생전 처음 해보는 외국생활에다가 이미지
마저 그랬으니 막막할 뿐이었다.

어쨌든 단독주택을 마련하고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의 현관문은
닫으면 자동으로 잠기게 되어 있었다. 잠깐 앞마당에 나올 때에도
꼭 열쇠를 챙겨나와야 했다. 2년쯤 지났을까. 어느날 미역국을 끓이
다가 무심코 텃밭에 기르는 파를 따러 나온다는 것이 그만 일의 발
단이 되고 말았다. 문을 나서자마자 뒤쪽에서 쿵하고 닫히는 소리에
가슴이 덜컹 했다. 이미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그곳에서 사는 동안 이웃사람 하나 알고 지내지 못한 자신이 원
망스러웠다.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인적 없는 길을 바라보며 조심
스럽지 못한 행동을 후회해야 했다. 할 수 없이 옆집의 초인종을 눌
렀다. 조그만 여자아이하나가 내다보더니, 다시 집안으로 쪼르르 들
어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어떻게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고 있으려니 나
이가 족히 90은 되어보이는 할머니를 선두로 그 집안의 여자는 모두
다 나온 것 같았다. 4대가 한 집안에 살고 있는데 마침 도움이 될
만한 남자들은 다들 나가고 없는 것 같았다.

사정을 설명하자 연세 많은 할머니는 옆집, 앞집을 오가며 분주
하게 다니시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결국 어디선가 남자 한명을 데리
고 왔다. 그 남자는 1시간 넘게 땀을 뻘뻘 흘려가며 잠긴 문을 열어
주었다. 그 사이 미역국은 끓을 대로 끓어 미역이 새까맣게 탔고,집
안에는 매캐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와 얼마 안되는 돈을 주려 했으나 "당연한 일을 했
는데 무슨 돈이냐"면서 "차가운 냉수나 한잔 달라"고 했다. 그러면
서 "예비용 열쇠를 집부근에 파묻어 두면 이런 상황에서 요긴하게
쓰일 겁니다"라고 충고해 주었다. 이웃집 할머니는 그때까지도 걱정
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바닥에 눌어붙은 미역을 긁어내며 왠지 '한국에서 친하게 지냈던
이웃집 아주머니가 이곳의 할머니와 인상이 비슷한데…' 하는 생각
이 들었다.
( 황경숙·30·주부·서울 도봉구 창4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