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하원에서 탄핵 결정을 받은 클린턴 대통령은 17대 앤드루 존슨
대통령과 비교되기도 한다. 미 언론은 "미 역사상 존슨에 이어 두번째,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으로선 첫번째 하원 탄핵"이라며 둘의 '악연'을
설명했다.

존슨은 1865년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하면서 부통령에서 대통령을 승
계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존슨은 클린턴과 적지 않은 유사점을 갖고
있다. 둘다 워싱턴 정객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남부 촌뜨기' 출신
이었다. 존슨은 노스 캐롤라이나에서 양복점 재봉사로 출발해 노동운동
을 주도하면서 시장-연방의원-주지사-상원의원-부통령으로 '입신'했다.
시장이 된 후 교사 출신의 부인(엘리자 맥카들)을 만나 글쓰기와 산수
를 배운 점에서 클린턴처럼 내조의 덕을 봤다.

하지만 존슨은 클린턴과 탄핵의 성격이 다르다는 큰 차이점을 갖고
있다.

그의 탄핵 이유는 장군의 임면권에 관한 의회와의 충돌이었다. 의회
에 용서를 구하거나 타협하려 하지 않고 "탄핵하려면 해보라"며 끝까지
싸운 기록도 갖고 있다.

그러나 둘의 가장 큰 차이는 환경과 인식의 변화가 아닌가 싶다. 존
슨 시대에는 공직자의 간통이나 성희롱이 크게 문제시 되지 않았을 것
이다. 또 요즘처럼 TV나 인터넷이 없는 상황에서 탄핵 문제는 정계 내
부의 소동으로 그칠 수 있었을 것이다.

탄핵안 통과후 ABC방송 인터뷰에 나온 한 노인은 클린턴 사임 이유
로 "대통령은 이미 자신과 국가에 너무 많은 상처를 입혔다"고 말했
다. 이번 미국의 이라크 응징처럼 국가적 중요 정책이 정치적 동기로
조롱받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클린턴은 하원 탄핵표결 직전 정신적 안정이 필요했는지 사무실로
'영적 조언자(Spiritual Adviser)'를 불러 자리를 함께 했다고 한다.그
리곤 성추문 이후 처음으로 힐러리와 팔짱을 끼고 공식석상에 등장, 변
함없는 부부애를 연출했다. 클린턴이 '정치적 지진(Political Earthquake)'
와중에서 또다시 특유의 '생존력'을 발휘할지, 아니면 자신이 파놓은
덫에 걸려 넘어질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미 대통령의 통치권 누수와
리더십 약화는 곧 전세계에 치명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 강효상·워싱턴특파원·hskang@chosun 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