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법과 인습에 억눌려 우는 한국 여성과 평생 같이 눈물 흘릴 것
입니다.".
17일 작고한 이태영 전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은 자기 말처럼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혼당하고, 거기에 자식과 재산까지 빼앗기고 쫓겨나
는 여자들이 불쌍해서 민법(가족법) 개정 운동에 앞장섰고, 억울하고 마
음 아픈 사연에는 함께 울면서 문제를 풀어주는 '해결사'였다. 축첩반
대, 가족법 개정, 동성동본 금혼제 폐지 운동 등 그가 앞장 서 이뤄낸
결실은 이 나라 여성 해방사와 궤를 같이한다.
그에게는 여러가지 '한국 최초'가 수식어로 붙는다. 서울대 법대 최
초의 여학생, 최초의 여 변호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법학 박사, 최초
의 법대 여성학장…. 그못잖게 그는 풍파 많았던 야당 정치인 고 정일
형 박사의 아내이자, 4남매를 두고 대학을 다닌 억척으로 더 이름났다.
그의 84년 삶은 한국 현대여성사이기도 하다. 평북 운산 출신으로,
"딸도 똑똑하면 끝까지 공부시키겠다"는 어머니와 오빠의 보살핌 아래
그는 거친데 없이 자랐다. 이화여전 가사과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교사로
일하던 그는 정일형을 만나 결혼했으나 평양 감옥에 갇힌 남편 뒷바라지
와 홀로된 시어머니, 자녀 부양은 온전히 그의 몫으로, 이불 행상에 삯
바느질로 생계를 이었다.
해방후 그는 정일형 박사의 '외조'로 갚음 받는다. "고생 보따리를 바
꿔 멥시다." 아내에게 편지한대로, 정일형 박사가 네 자녀를 돌보고 그
는 46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 서른여덟 때인 52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
격했다. 하지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야당 정치인 아내란 이유로 판사
임명을 거부,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가 56년 설립, 39년동안 소장직을 맡은 '한국가정법률상담소'는 법
률상의 불평등을 벗겨내는데 주력했다. 그는 여성 해방운동뿐 아니라 민
주화운동에도 몸바쳐온 인권운동가로, 75년 막사이사이상, 82년 유네스
코인권교육상, 84년 국제변호사회 국제법률봉사상,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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