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4일 발생했던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이 발생 10개월
가까이 흐른 9일 갑자기 현안으로 부각되게 된 것은 한나라당 하
경근 의원이 이끄는 국회 국방위 진상파악소위의 공이 컸다.그 전
까지 김 중위의 부친 김척 예비역 중장이 이의를 제기했으나,가족
의 일방적 주장으로만 취급됐다. 첫 수사를 미군이 했고, 군 수사
당국이 두차례에 걸쳐 자살로 결론지은 것도 영향이 컸다.
소위가 구성된 것은 10월 19일. 문제에 대해 거의 유일하게 관
심을 갖고 있던 하 의원이 소위위원장이 되고 여야 의원 5명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국정감사 등으로 바빠 1개월 이상 활동이 없었
고 본격활동은 11월 27일 첫 회의 때부터 시작됐다.
결정적 전환은 지난 3일의 두번째 회의. 김 중위 소대원으로 있
던 김모씨가 참고인으로 나와 김 중위의 부소대장인 김모 중사가
북측과 특별한 접촉을 하고 있었다는 내용을 진술했다. 귀순한 변
용관 북한군 상위도 같은 날 참고인으로 나와 한국 군인들이 북한
과 접촉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소위는 이 두 진술을 종합, '김
중위가 김 중사의 접촉사실을 알게 되자 살해한뒤 자살로 위장했
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도출했다.
군 수사당국은 이 진술이 나올 때까지 김 중사의 대북접촉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하 의원측은 기무사에 이 사실을 통보하면서,
김 중사가 증거인멸 및 도주의 우려가 있으니 신병을 확보하는 것
이 좋겠다고 했고 기무사는 실제로 즉각 김 중사를 구속했다.
소위는 7일 판문점 사고현장을 방문, 자살보다는 타살 의혹이
짙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소위는 8일 문제의 김 중사 등 참고인 7
명을 더 불러 조사하려 했으나 잇단 군 사고를 따지기 위한 국방
위 전체회의가 열리는 바람에 순연돼 9일 중간결과를 발표하게 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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