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호같은 중·고생 은어들… 삭막한 정서 표현에 속어화 심각 ##.
♧ "아침부터 체커한테 당해서 기분 째진다."
"나 오늘 유승준 콘서트 갔다 존나 열받았다! 줄 섰다가 잠깐 화장실
간 사이 웬 량생이가 내 자리에 와 있는 거야. 계속 거기 있었다고 쌩구
라까면서. 빡돌잖아. 맞장 떠서 쪽 줄래다 괜히 량생이 옆구리 찔러 산
타일까봐 야리기만 했어."
"후달렸구나? 후까시까다 안되면 째면 되지! 이제 와서 숑숑대긴. 야
근데 걔 봤냐? 유승준 빼갈이. 그 머리 디게 짧은 애 말야.".
서울 시내 중고등학교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런 10대들의 말을 알
아들을 만한 어른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들이 말하는 체커란 어머니를
말한다.
첫 문장은 "아침부터 엄마한테 야단 맞아서 기분이 아주 나쁘다"는
뜻이 된다.
서울시 청소년사업관이 발행하는 푸른소식지가 여중생들의 전화 대화
내용을 편집해 구성해본 두세번째 문장에는 요즘 10대들이 쓰는 은어들
이 적나라하게 나오고 있다. 존나(많이, 매우), 량생이(불량 학생), 빡
돌다(화나다), 후달리다(겁나다), 야리다(노려보다), 숑숑대다(투덜거리
다), 맞장뜨다(대들다), 빼갈이(백댄서), 쌩구라(거짓말), 산타다(때리
다), 후까시까다(말로 겁주다), 째다(도망가다)… . 이렇게 암호같은 은
어를 해석한 뒤에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두번째 문장은 "콘서트 현장에서 화장실을 잠시 갔다오니까 웬 불량
학생이 새치기를 했고 이 때문에 비켜달라고 하자 '원래부터 자리가 여
기였다'고 말해 화가 났다. 그래서 대들어서 망신을 주려 했지만 괜히
건드려 맞을까봐 노려보기만 했다"는 뜻의 말. 그러자 친구가 "겁났구나
.말로 겁주다가 안되면 도망가면 되지! 이제와서 불평하긴…"하고 응수
하는 내용이다.
은어란 특정한 집단이 다른 집단이 모르게 쓰는 말. 10대들의 은어란
곧 선생님이나 학부모가 모르게 자기들만이 아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10대들의 은어는 최근 들어 단순한 은어의 범위를 넘어
일상 용어로까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은어가 암호·부호화하면서 세
대간 단절을 낳는 것은 물론, 국적 불명의 속어들이 양산돼 일상 용어로
번지면서 심각한 사회 문제의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강남대 국어국
문학과 박영섭(47) 교수는 "요즘 10대 은어는 단순히 자신들이 하는 말
을 어른들이 모르게 하겠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면서 "급속히 속어
화하면서 일상 용어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10대들의 은어는 다양하다. 현실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재치가
돋보이는 은어도 적잖다. 이를테면 가랑비(눈이 작은 아이), 깻잎(촌스
러운 아이), 다이아몬드(여드름), 돌밭(공부 못하는 아이), 8비트(이해
가느린 사람), 범생이(모범생), 총잡이(주유소 주유원), 링컨(커닝), 야
자시간(야간자율학습 시간) 등이 여기에 속하는 은어들. 하지만 이런 양
질은 어들은 대체로 생명력이 짧다고 한다.
반면 조어법에도 맞지 않고 격음과 경음 투성이인 10대들의 은어는
생명력도 길 뿐 아니라 전파력도 빠르다. 10대들의 웹 진인 '채널10'(www
.ch10.com)에 실린 은어 사전 '길거리 단어장'은 짱(최고), 뽀리다(훔치
다), 생까다(모르는 체하다), 삐꾸(정신·육체적으로 성치 않은 사람),
살까다(소름끼친다, 무섭다), 쌔리다(방귀 뀌다), 쌔삥하다·쌔끈하다
(멋지다), 야리까다(담배 피다), 얄딱꾸리하다(이상하다), 짜져(보기 싫
으니까 사라져), 사발치다(거짓말하다) 등 온통 된소리와 거센소리로 겹
쳐진 말투성이다.
이 외에도 빽(선배), 짱들리(짱을 보좌하는 아이), 담탱이(담임선생),
쎄리카(경찰차), 짝통(가짜), 띱는다(훔치다), 모사까다(모르는 사람 폭
행하고 돈을 빼앗다), 씨유(Cu)하다(형편없다), 뒷달깐다(뒤에서 욕한다),
씨빠빠(순진하고 개성이 없는 애들) 등도 널리 쓰인다. 격음·경음이 많
은 것은 10대들의 집단 정서와 분위기가 그만큼 불안하고 삭막하다는 것
을 드러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 조어법은 아예 국어학자조차 제대로
알기 힘들 정도이다.
개중에는 비행 청소년 집단에서 유래한 것도 적잖은데, 앞서 나온 산
탄다, 빵들리 등을 비롯해 칼빵(피부에 좋아하는 사람 이름을 칼로 새기
는것), 노상깐다(금품을 갈취한다), 사과먹다(본드나 가스를 흡입하다),
일짱(학교에서 가장 싸움 잘하는 아이), 물갈이하다(후배들을 구타하다)
등이 이런 종류의 은어들이다.
성이나 이성 교제와 관련된 말도 10대 은어의 상당수를 차지한다. 깔,
깔따구, 애끼 등은 이미 여자 친구라는 보통명사를 대신한 지 오래. 이
성 친구를 꼬드기는 것은 까대기, 미팅 등에서 만난 못생긴 아이는 '지
뢰''폭탄' 등으로 묘사한다. 성 관계를 맺는 것은 통상 '콩깐다' '폭탄
맞다' 등으로 표현하는데, 여학생들이 주로 쓴다고 한다. 쪽스는 키스를
의미하는 것이고 노루표, 엽서, 뽀뽀뽀 등은 포르노를 뜻한다.
PC통신·삐삐 등이 등장한 이후 벌어지는 10대 은어의 간략화와 부
호·암호화 현상도 다른 세대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20대 후반만 돼도
10대들의 채팅 방에 등장하는 암호 같은 말들을 쉽게 알아듣기 힘들 정
도라고 한다.
통신에서 주로 쓰이는 방가요(반가워요), 설(서울), 시로(싫어), 진
짤구(정말로) 등은 어림짐작으로 그 의미를 알 수도 있지만 삐삐 약어로
가면 속수무책. '1212'는 '술 마시러 가자'는 말. 1(홀)과 2(짝)이 결합
해서 '홀짝'이 되는 것을 응용해서 만든 부호이다. '5454'는 '오빠 사랑
해'라는 의미이고 '2848'은 '이제 그만 만나자' '486'은 '사랑해'라는
뜻이다.
이런 은어는 흔히 생각하듯 불량 청소년만이 아니라 10대들 사이에
폭넓게 쓰인다. 왕따, 깔, 짱, 범생이, 중딩(중학생), 고딩(고등학생)
등은 아예 은어 차원을 넘어 보통명사처럼 쓰이고 있으며 20대 초반으로
사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전 지역 초중고생 1300여명을 상대로 은어 실태를 조
사해 발표한 한남대 국어교육과 마성식 교수에 따르면, 은어 사용은 대
체로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이 조사에서 남자 중학생의
16.7%, 여자중학생 19.8%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은어를 사용했다고
답했다. 중학생 이상이 되면 아예 전체 학생의 76.4%가 이런 은어를 사
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은어를 사용하는 이유도 본래 목적대로 기밀을 유지하기 위한 것은
중고생을 합쳐 10.0%에 불과한 반면, 재미있어서(39.0%), 버릇이 되어
무의식적으로(35.3%), 은어를 쓰지 않으면 친구와 대화가 되지 않기 때
문에(15.6%) 등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서울 S정보산업고의 K군(16)은
"특별히 선생님이 몰라야 될 경우에만 쓰는 것은 아니다"면서 "이런 말
들을 모르면 친구랑 대화가 잘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 정도이지만 10대 은어에 관심을 갖고 대책 마련에 나서
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일부 교수·교사들이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은어 수집에 나서고 최근에 나온 '나쁜 영화'와 '짱' 정도가 이런 10대
은어 세계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20년째 학생 상담 활동을 하며 은어를 수집하고 있는 서울 마포중학
교 나병선(56·국어) 교사는 "언어는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인 만큼
10대들의 삭막한 언어는 곧 아이들의 삭막한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서"학부모, 시민단체들의 언어 순화 운동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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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선 마포중 교사
'왕따'도 옛말… 요즘은 '전따'가 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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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중학교 나병선 교사는 늘 자료 더미에 묻혀 산다. 30년 중
20년을 학생 상담에 보내면서 수집한 각종 은어가 집안 곳곳에 수북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교육 현장에서 느끼는 10대 은어의 문제점
들을 물어보았다.
-10대들이 은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하는 말로, 튀기 위해서 많이 쓰는 것 같다. 교실에서 은
어를 쓴다는 것 자체가 묘하게도 학생들 사이에 우쭐거릴 수 있는 거리
가 된다.".
-어느 정도로 은어를 사용하는가.
"교사들도 알아듣는 단어가 몇 개 안된다. 일상적으로 쓰인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수시로 새로운 것이 생겨나고 있어 따로 공부 안하면 알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를테면 요즘은 왕따에 이어 전따(전교생으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아이)가 유행하고 있다.".
-10대 은어 중에는 기발한 것도 적잖은데.
"그렇다. 하지만 다수가 비행 청소년 무리에서 유래하는 등 문제점이
훨씬 더 많다. 비행 청소년들이 하는 얘기 중에는 알아들을 수 있는 말
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따라서 10대들을 올바로 이끄는 첫 걸음이 언어
치유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