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양대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일본에서 '글로벌 자본주의의 괴물'로 불린다. 이 표현엔시장을 좌우
하는 막강한 파워를 지니고 있지만, 그 힘이 때때로 합리적인 궤도를
벗어나 자의적으로 사용되곤 한다는 두가지 의미가 함축돼 있다.
아시아 통화위기 이후 신용평가사들은 두가지 오류를 범했다는 것
이 일본의 시각이다. 첫째는 아시아 신용능력 실추를 예견하지 못함
으로써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 위기가 발생한
뒤에야 무더기 신용 강등에 나서 위기를 더욱 심화시켰고, 스스로 시
장교란의 원인 제공자가 됐다고 일본은 지적한다.
하물며 세계 제일 채권국이고 경상수지 흑자국이며 외환 최대보유
국인 일본의 국가신용도가 강등당하는 것은 난센스라고 반발하고 있
다. 일본의 반박은 "가진 돈이 많은데 왜 채무이행능력을 의심받느냐"
는 것으로 요약된다. 요컨대 일본의 상식으로는 '세계최대 채무국이
자 경상적자국인 빚쟁이(미국)보다 돈꿔준 채권자(일본)의 신용이 낮
은 모순'을 납득하질 못한다.
무디스가 신용강등의 주된 이유로 지적한 재정악화 문제는 '편향
적'이라고 반박한다. 물론 최근 잇딴 경기부양책으로 정부의 재정적
자가 급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누적채무의 몇배에
달하는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적어도 채무불이행의 위험성을 의미하
는 신용도가 문제될 이유는 하등 없다. 일본의 대외원조가 세계 최대
인 것이 이를 반증한다.
무엇보다 일본이 격분하는 것은 '임의평가'라는 방식이다. 신용평
가사의 평가는 채권 발행자의 의뢰를 받아 하는 경우와 의뢰없이 임
의로 선정해 평가하는 두가지가 있다. 이중 임의평가는 평가받는 쪽
의 인터뷰나 내부자료 열람, 설명청취 없이 공표된 자료만 갖고 실시
된다. 이번 일본의 신용도강등은 임의평가였고, 일본정부에 설명기회
가 주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무디스 판단자료 자체가 불충분하며 부
정확할수 밖에 없다고 일본측은 반박하고 있다.
무디스는 또한 각국 특유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기
준에 평가대상을 무리하게 꿰맞추려는 오만함도 엿보인다고 일본은
지적한다. 매년 5,000억엔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도요타자동차의 신
용등급을 강등한 것이 대표적 예다. 당시 무디스가 내세운 신용등급
강등의 주된 이유는 '도요타의 종신고용제'였다. 익명을 요구한 일본
정부수뇌는 무디스에 대해 "건방지다"고 격분했다.
지난 1년간 무디스의 '절대권력'에 휘둘려온 시장은 일단 냉정을
유지하고 있다. 무디스 발표만 나오면 환율이 춤추고 주가가 요동치
던 몇달전까지의 상황과는 사뭇 다르다. 시장이 이제서야 '무디스 환
상'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라고 일본측은 해석하고 있다.